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9다44327 판결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9다44327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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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공2010하,1233]

판시사항

교통사고로 심신상실의 상태에 빠진 갑이 을 보험회사를 상대로 교통사고 발생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시점에 보험계약에 기한 보험금의 청구를 내용으로 하는 소를 제기한 사안에서, 을 보험회사가 주장하는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여 갑의 보험금청구를 인용한 원심판단을 수긍한 사례

판결요지

교통사고로 심신상실의 상태에 빠진 갑이 을 보험회사를 상대로 교통사고 발생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시점에 보험계약에 기한 보험금의 청구를 내용으로 하는 소를 제기한 사안에서, 보험금청구권에 대하여는 2년이라는 매우 짧은 소멸시효기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보험자 스스로 보험금청구권자의 사정에 성실하게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하는 여러 장애사유 중 권리자의 심신상실상태에 대하여는 특별한 법적 고려를 베풀 필요가 있다는 점, 갑이 보험사고로 인하여 의식불명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그 사고 직후부터 명확하게 알고 있던 을 보험회사는 갑의 사실상 대리인에게 보험금 중 일부를 지급하여 법원으로부터 금치산선고를 받지 아니하고도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을 보험회사가 주장하는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여 갑의 보험금청구를 인용한 원심판단을 수긍한 사례.

원고, 피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윤정대)

피고, 상고인

현대해상화재보험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박성원외 3인)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이 사건의 사실관계 및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가. 원심판결 이유 및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원고는 1997. 10. 9. 피고와 사이에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그 보험기간 중인 1998. 6. 27.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반대방향에서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에 충돌당하는 사고(이하 ‘이 사건 교통사고’라고 한다)를 당하여 두개기저골 골절, 뇌실질내 혈종 등의 상해를 입었고, 그 결과 이 사건 교통사고 발생 이래 원심 변론종결시까지 의식혼탁, 운동마비 등의 식물인간상태에 있어 타인과의 대화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심신상실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피고는 이 사건 교통사고가 발생한 사실 및 원고가 위와 같이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1998. 12. 14. 및 1999. 4. 1. 원고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그 부등에게 이 사건 보험계약에 의한 보험금 중 일부인 교통의료비 및 임시생활비를 지급하였다.

이 사건 보험계약에 기한 보험금의 청구를 내용으로 하는 이 사건 소는 원고의 이름으로 선임된 소송대리인에 의하여 2006. 7. 20.에 제기되었고, 이에 대하여 피고는 이 사건 교통사고 발생일로부터 2년이 경과하여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항변을 하였다. 이에 원고의 처인 소외인은 이 사건 제1심소송 계속 중 원고에 대한 금치산선고를 청구하여 2008. 1. 25. 원고에 대하여 금치산이 선고되었다. 소외인은 같은 해 3. 5. 원고의 후견인으로 취임하여 원고의 법정대리인이 된 후 같은 해 4. 3. 위 소송대리인을 다시 이 사건 소송의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고 같은 해 8. 17. 이 사건 소송에 관한 친족회의 동의를 받았다.

나. 원심은 이 사건 교통사고로 인한 원고의 보험금지급청구권에 관하여 2년의 소멸시효가 완성하였음을 인정하였으나, 피고가 위 채권의 시효소멸을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이 사건 보험금청구를 인용하였다.

즉 원고는 이 사건 교통사고가 발생한 이후로 의식불명의 식물인간상태가 되어 심신상실의 상태가 되었는데 이러한 상태에 있던 원고가 스스로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청구권을 행사할 것으로는 사실상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비록 이러한 사유가 사실상의 권리행사장애사유에 불과할지라도, 보험자와 보험계약자·피보험자 사이의 형평, 보험제도의 사회적 기능,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보험계약관계에 수반되는 신의성실의 원칙 등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경우까지 피고가 주장하는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받아들이는 것은 의식불명의 원고에게 너무 가혹한 결과가 되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채권자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들어 그 채권에 관한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평가하는 것에는 주의를 요하고 이를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가. 민법 제166조 제1항 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판례는 여기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라고 함은 그 권리의 행사가 법률상의 장애, 예를 들면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의 행사가 가능함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는 것과 같이 그 행사에 사실상의 장애가 있음에 불과한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취하여 왔다( 대법원 1984. 12. 26. 선고 84누572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1992. 3. 31. 선고 91다32053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2004. 4. 27. 선고 2003두10763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채권자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들어 그 채권에 관한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쉽사리 인정하게 되면,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위와 같은 법규칙은 많은 부분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기 쉬운 것이다.

나. 신의성실의 원칙이 특히 엄격한 법적용의 가혹함을 완화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이를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당사자로 하여금 어떠한 법규칙에서 법률요건 등으로 수용되지 아니한 사정을 법관 등 법적용자에게 제시하면서 그러한 사정 아래서 법규칙을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가혹한 결과가 됨을 법적용자의 법감정 내지 윤리감각에 호소하여 법규칙을 원래의 모습대로 적용하는 것을 제한 또는 배제하게 하는 하나의 법적 장치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발동의 방식은 일반적으로 ‘포섭’이라는 논리적 사고형식으로 적용가능한 구체적 법률요건 및 법률효과로써 구성되는 법규칙의 경우와는 현저한 대비를 이룬다. 법은 개별 법제도와 관련을 가질 수 있는 모든 사정을 남김없이 법률요건 및 법률효과의 구성에 반영하지 아니하며, 당해 법제도에서 전형적으로 문제되는 중요한 사정만을 추출하고 그것들에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포섭’이 행하여질 수 있도록 일정한 언어표현을 부여함으로써 법률요건과 법률효과를 마련하는 것이 통상인 것이다. 그 법률요건 등을 보다 명확한 내용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신의칙의 내용을 이루는 다른 법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성실한 배려의 정신이 그 하나의 가치지표로 작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법규칙 내부의 문제이고, 여기서 문제되는 바의, 개별 법규칙의 저편에 있는 일반적 법원칙으로서의 신의칙과는 그 논의의 차원을 달리한다.

따라서 그와 같이 하여 마련된 법규칙을 개별 사안에 적용하는 국면에서 신의칙을 통하여 ‘당사자 사이의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위와 같은 법규칙의 체계를 기본적인 구성원리로 하는 우리 법에서는 예외로서의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신의성실의 원칙을 실정적으로 규정하는 민법 제2조 , 민사소송법 제1조 등이 개별적인 법제도와 무관하게 위 각 법률 맨 앞의 ‘통칙’으로 위치하고 있는 것은 그 법원칙의 ‘기본원리성’을 말하여 준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예외, 그러나 역시 개별 법제도 일반에서 두루 문제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보편적 예외’로서의 성격을 말하여 준다고 함이 적절할 수 있다.

다. 그러나 그러한 예외가 어떠한 범위에서 어떠한 내용으로 허용되는가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고, 특히 법적 안정성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법제도들에 있어서는 앞서 본 바와 같은 신의칙의 성질에 비추어 그 적용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에 관하여 보면, 소멸시효는 시간의 흐름에 좇아 성질상 당연히 더욱 커져가는 법률관계의 불명확성에 대처하려는 목적으로 역사적 경험에 의하여 갈고 닦여져서 신중하게 마련된 제도로서 법적 안정성이 무겁게 고려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그러한 만큼, 신의칙이 이에 아예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하여도(시효소멸의 주장에도 신의칙이 적용될 수 있음은 대법원 1994. 12. 9. 선고 93다27604 판결 등 많은 재판례를 통하여 시인되는 바이다),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변함없이 적용되어 왔던 법률상 장애/사실상 장애의 기초적인 구분기준을 내용이 본래적으로 불명확하고 개별 사안의 고유한 요소에 열려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일반적인 법원칙으로서의 신의칙을 통하여 아예 무너뜨리는 오류를 경계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이는 신의칙이 그 적용의 실제에 있어서 법의 흠결을 보충하는 국면에서 장래의 법규칙 형성을 선도하여 방향을 제시하는 향도적 역할을 하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는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는지 여부의 문제와 관련하여 특별히 고려되어야 할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다고 할 것이다.

우선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보험금청구권에 대하여 법은 2년이라는 매우 짧은 소멸시효기간을 정하고 있다( 상법 제662조 ). 이와 같이 일반상사채권의 5년에 비하여서도 이례적으로 짧은 소멸시효기간은 보험사업에서 재무상황의 명료성을 확보한다는 보험감독정책상의 요청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보험금지급관계상의 대립당사자인 보험회사 등 보험자 자신의 이익과 직접으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는 설명은 예외적으로 단기인 소멸시효기간으로 말미암아 그만큼 권리를 쉽게 상실하게 되는 보험금청구권자측의 사정에 보험자 스스로도 성실하게 배려할 필요를 예리하게 제시하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이 사건에서 문제된 것과 같은 상해보험이 원심이 지적하는 대로 피보험자에 대하여 생활보장적 역할을 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 특히 원고와 같이 의식불명상태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치료 및 개호를 받기 위하여 막대한 경제적 지출이 강요되는 사정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고는 이 사건 보험금청구권을 발생시키는 보험사고 자체로 인하여 심신상실상태에 빠짐으로써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민법 제179조 는 “소멸시효의 기간 만료 전 6개월 내에 무능력자의 법정대리인이 없는 때에는 그가 능력자가 되거나 법정대리인이 취임한 때로부터 6월 내에는 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한다”고 정하여, 금치산자 등 행위무능력자에게 법정대리인이 없어서 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정지를 명문으로 정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막고 있다. 이 규정은 법원으로부터 금치산선고 등을 받아 심신상실의 상태(상태) 등이 공적으로 확인된 사람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그 선고를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쉽사리 준용 또는 유추적용할 것은 아니라고 하여도(채무자는 채권자가 그러한 상태에 있음을 알지 못하여 자신의 채무에 관한 불명확상태가 이미 자신에게 유리하게 종결되었다고, 즉 설사 자신이 채무를 진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하여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이제 법적 추급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도 충분히 상정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을 보호할 이익 자체가 ―다른 관련자들의 이익과의 균형을 위하여 그 무게를 어느 만큼으로 잡을 것인가는 차후의 문제로 하고― 법적으로 시인됨을 분명히 말하여 준다. 즉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하는 여러 장애사유 중 권리자의 심신상실상태에 대하여는 특별한 법적 고려를 베풀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민법 제179조 의 입법에서 참고가 된 2002년 전면개정 전의 독일 민법 제206조 (현행 제210조 )도 의사무능력자이기만 하면 그를 위하여 소멸시효의 정지를 인정한다).

또한 피고는 앞서 본 대로 원고가 위 보험사고로 인하여 의식불명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그 사고 직후부터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피고는 1998년과 1999년의 두 차례에 걸쳐 원고를 사실상 대리하여 그 후견인 역할을 하던 원고의 부 등에게 이 사건 보험계약에 기한 보험금 중 일부를 지급하기까지 하였다. 이는 원고의 심신상실상태로 그가 스스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게 되었지만 원고측이 그 때문에 굳이 법원에 금치산선고를 청구하여 그 선고를 받지 아니하고도 피고로부터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 외에 원고측이 이 사건 금치산선고의 청구를 악의적으로 지연하였다는 사정은 엿보이지 아니한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에서 원심이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한 것은 결과적으로 수긍할 수 있고, 이에 반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4.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의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이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지형(재판장) 양승태 전수안 양창수(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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