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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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기)][공2005.6.15.(228),950]

판시사항

[1] 채무자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 경우

[2]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 기준

[3] 민법 제766조 제2항 의 '불법행위를 한 날'의 의미

판결요지

[1]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 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2]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고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일반 채무자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에서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또한 그와 같은 일반적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3]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에 있어서 민법 제766조 제2항 에 의한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이란 가해행위가 있었던 날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손해의 결과가 발생한 날을 의미하지만, 그 손해의 결과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면 그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의 결과발생을 알았거나 예상할 수 있는가 여부에 관계없이 가해행위로 인한 손해가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

원고,피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부일 담당변호사 정환영)

피고,상고인

대한민국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본다.

1. 원심의 사실인정 및 판단

가. 원심은 그 채용 증거들을 종합하여 아래와 같은 요지의 기초사실을 인정하였다.

(1) 원고는 1950. 11. 학도의용군으로 입대하여 육군 제8사단에서 복무하다가 1953. 7. 제대하였다.

(2) 1956. 원고는 피고로부터 징집영장을 받고 학도의용군 참전사실을 들어 징집 면제를 요청하였으나,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는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도의용군은 군번이 없고 정식 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된 다음, 1956. 9. 11. 육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다가 1959. 8. 1. 만기제대하였다.

(3) 피고 산하 국방부장관은 1999. 3. 11.에야 비로소 원고가 위와 같이 학도의용군으로 복무한 사실을 공식 확인하였다.

(4) 이에 원고는 1999. 12. 1. 서울지방병무청장에게 위와 같은 군복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 기타 배상을 해 달라고 진정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2002. 12. 12.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5) 한편, 원고가 재복무 중이던 1957. 8. 15.부터 시행된 구 병역법 (법률 제444호로 전문 개정되어 1962. 10. 1. 법률 제1163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병역법' 이라 한다)에는 부칙 제62조 제1항으로 "단기 4283년 6월 25일 북한괴뢰집단의 침투를 방위하기 위하여 당시 학교에 재적중인 자로서 지원에 의하여 군에 복무하여 전투에 참가한 자(학도의용군이라 약칭한다)는 본법에 의한 현역에 복무한 자로 간주하여 제1예비역에 편입한다."라는 규정이 신설되었다.

나. 원심은 위 기초사실에 터잡아, 원고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1) 피고는 구 병역법 부칙 제62조 제1항에 의하여 그 시행일인 1957. 8. 15.부터 병적(병적) 관리자로서 학도의용군에 관한 사항을 조사하여 기록할 의무가 있고, 특히 당시 군 복무자 가운데 학도의용군으로 복무하였던 자가 있는지 조사하여 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위 규정에 따라 상당한 기간 내에 전역시킬 의무가 있음에도, 피고 산하 국방부가 이를 간과한 잘못으로 복무연한인 1959. 8. 1.에야 원고를 만기전역시켰으므로 피고는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2) 피고는 이 사건 청구가 시효소멸하였다는 취지로 항변하지만,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 의 대원칙인 신의성실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는 등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고, 또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국민이 국가가 취한 조치가 적법하다고 믿은 것에 어떠한 잘못이 있다고 볼 수는 없어 국가에 의한 어떤 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국민이 자진해서 국가의 행위에 대하여 위법을 문제삼고 그에 대해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할 것인데, 병적 관리자인 피고가 원고의 학도의용군 복무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아니한 1999. 3. 11. 전에는 피고 산하 국방부가 구 병역법 조항에 위반한 불법행위를 하였음을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거의 알기 어려워 일반 국민인 원고로서는 국가의 그와 같은 조치에 전적인 신뢰를 둘 수밖에 없는 실정이며, 더구나 위법행위를 한 국가가 그 위법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그 위법을 몰랐던 원고에 대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신의칙상 또는 형평의 원칙상 도저히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 사건 청구에 대한 소멸시효는 피고가 원고의 학도의용군 복무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여 준 1999. 3. 11.부터 그 기간이 개시되는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니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

2.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한 판단

구 병역법 부칙 제62조 제1항은 징집과 병적 관리의 주체인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임이 문언상 명백하고, 별도의 경과규정이 없어 그 시행 당시 군 복무자에게도 적용된다고 할 것이므로,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피고가 위 규정 시행 후 상당한 기간 내에 원고를 전역시키지 아니한 것이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가 된다고 본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는지 여부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 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임은 이미 당원이 여러 번 천명한 바 있다( 대법원 1997. 12. 12. 선고 95다29895 판결 ,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등 참조).

그러나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 대법원 1999. 9. 17. 선고 99다21257 판결 , 2001. 7. 10. 선고 98다38364 판결 등 참조),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고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앞서 본 바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또한 위와 같은 일반적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

이 사건에서 기록에 의하면, 원고가 1959. 8. 1. 전역한 후 1999. 3. 11. 피고로부터 학도의용군 참전에 대한 확인을 받기 전까지 자신의 학도의용군 참전사실을 확인받거나 또는 이중복무에 따른 보상 또는 배상을 받기 위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한 바 있는지, 여기에 대하여 피고가 어떻게 대응하였는지가 전혀 나타나지 아니하며, 원고 스스로도 1999.부터 증인을 확보하여 학도의용군 참전민원을 제기하자 피고 산하 국방부장관이 1999. 3. 11. 비로소 원고의 학도의용군 참전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고 주장할 뿐인바, 그렇다면 기록에 나타난 사정만으로는 피고가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 행사를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그런 조치가 불필요하다가 믿게 할 만한 언동을 하였다고 보기에는 부족하고, 객관적으로도 원고가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거나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상당한 사정이 있었다고도 보이지 아니하며, 피고가 원고에게 참전사실확인서를 작성하여 준 사정만으로 이를 시효의 이익을 포기하거나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없고, 다른 손해배상청구권의 채권자들과 달리 원고에게 특별한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거나 같은 처지의 다른 채권자들이 배상을 받았다는 사정도 보이지 아니하여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할 것이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또는 형평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는 보이지 아니한다.

따라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상 또는 형평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청구에 대한 소멸시효는 피고가 원고의 학도의용군 복무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여 준 1999. 3. 11.부터 진행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한 원심의 판단에는 소멸시효 완성 주장의 신의칙 위반 여부에 대한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아니하였거나 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

나. 이 사건 청구에 대한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나아가 원심의 판단 중, 이 사건 청구에 대한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원고의 전역일 1959. 8. 1.이 아닌 피고의 확인일 1999. 3. 11.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2002. 12. 12. 소송이 제기된 이 사건 청구의 소멸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하였다고 본 부분도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에 있어서 민법 제766조 제2항 에 의한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이란 가해행위가 있었던 날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손해의 결과가 발생한 날을 의미하지만 ( 대법원 1979. 12. 26. 선고 77다1894 , 1895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 손해의 결과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면 그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의 결과발생을 알았거나 예상할 수 있는가 여부에 관계없이 가해행위로 인한 손해가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 고 할 것인바( 대법원 1993. 7. 27. 선고 93다357 판결 참조),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상당한 기간 내에 원고에 대한 전역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만기까지 복무시킴으로써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할 것이지, 피고가 뒤늦게 참전사실확인서를 작성해 준 때에 비로소 손해의 발생이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민법 제766조 제1항 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기록에 의하면 피고는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항변할 뿐 위 규정에 의한 3년 단기소멸시효의 완성 주장인지 앞서 본 같은 조 제2항 에 의한 10년의 소멸시효의 완성 주장인지는 명백히 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이를 3년의 단기소멸시효 완성 주장도 포함하는 취지로 볼 수 있을 것인바, 이 사건에서 원고는 늦어도 위 확인서를 받았을 때에는 당연히 피고의 불법행위의 존재, 그로 인한 손해의 현실적 발생과 그 인과관계 등을 모두 알았고, 손해배상청구에 있어서 입증의 어려움도 해결되었다고 볼 것이어서, 위 제1항에 정한 3년의 단기소멸시효 역시 원고가 위 확인서를 받은 1999. 3. 11.부터는 진행한다고 하여야 할 것인데, 이 사건 소는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하였음이 역수상 명백한 2002. 12. 12.에야 제기되었으므로, 원심이 피고가 위 확인서를 작성해 준 날이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된다고 판단하였다면 바로 민법 제766조 제2항 에 정한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완성하지 아니하였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같은 조 제1항 에 정한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는지, 시효중단의 사유가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도 심리, 검토하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점에서도 원심판결에는 소멸시효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였거나 심리를 미진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3. 결 론

따라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으로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규홍(재판장) 이용우 박재윤 양승태(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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