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01. 6. 29. 선고 2001도1319 판결

대법원 2001. 6. 29. 선고 2001도1319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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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공문서작성·허위작성공문서행사·상해·증거인멸·허위검안서작성·허위작성검안 서행사]

판시사항

[1] 공모공동정범에 있어서 공모관계의 성립 요건

[2] 사체검안의가 빙초산의 성상이나 이를 마시고 사망하는 경우의 소견에 대하여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변사자가 '약물음독', '빙초산을 먹고 자살하였다.'는 취지로 사체검안서를 작성한 경우, 검안서작성에 있어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본 사례

[3] 허위검안서작성 등의 공모여부에 관한 심리미진을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1] 공모는 법률상 어떤 정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2인 이상이 공모하여 범죄에 공동가공하여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사의 결합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서, 비록 전체적인 모의과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수인 사이에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하여 그 의사의 결합이 이루어지면 공모관계가 성립하고, 이러한 공모가 이루어진 이상 실행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아니한 자라도 다른 공모자의 행위에 대하여 공동정범으로서 형사적 책임을 지는 것이다.

[2] 사체검안의가 빙초산의 성상이나 이를 마시고 사망하는 경우의 소견에 대하여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변사자가 '약물음독', '빙초산을 먹고 자살하였다.'는 취지로 사체검안서를 작성한 경우, 검안서작성에 있어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본 사례.

[3] 허위검안서작성 등의 공모 여부에 관한 심리미진을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참조판례

[1]

대법원 1998. 3. 27. 선고 98도30 판결(공1998상, 1261),

대법원 1998. 11. 24. 선고 98도2654 판결(공1999상, 81),

대법원 2000. 3. 14. 선고 99도4923 판결(공2000상, 1011),

대법원 2000. 11. 10. 선고 2000도3483 판결(공2001상, 91)

변호인

변호사 김기홍 외 3인

원심판결

대구지법 200 1. 2. 15. 선고 2000노4024 판결

주문

원심판결 중 피고인 1, 2, 3에 대한 부분 및 피고인 4에 대한 무죄부분을 각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대구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1. 피고인 1의 상고에 대하여

원심판결과 원심이 채용한 증거들을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인 1의 판시 각 상해의 범죄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없다.

그리고 징역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된 이 사건에서 형의 양정이 부당하다는 주장은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못한다.

2.  검사의 상고에 대하여( 피고인 1, 2, 3이 피고인 4와 공모하여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고 행사하였다는 점과 피고인 1, 2, 3, 4가 공모하여 허위 검안서를 작성하고 행사하였다는 점 및 피고인 2의 증거인멸의 점) 

가.  공소사실의 요지

(1) 피고인 1, 같은 피고인 2는 1999. 5. 29. 15:00경 위 피고인 1의 집 지하실에서 피해자가 사망한 것을 발견하고 그 시경 변사 현장을 정리하고, 피고인 3, 같은 피고인 4는 같은 날 21:00경 위 지하실에서 피해자를 검시하면서 빙초산을 마시고 자살한 것으로 처리하기로 결의하여, 사실은 피해자의 우측 흉부, 양측 손등, 안면부 및 양측 하지 등에 무수한 좌상 및 찰과상이 있으며 위 지하실에는 빙초산이 없고 피해자가 빙초산을 마신 사실이 전혀 없으며 위 지하실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우유병에 든 액체는 그 액성이 중성으로 무색, 무취였음에도 불구하고 변사체로 발견된 피해자의 사인을 은폐하기 위하여 피해자가 빙초산을 마시고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로 음독 자살한 것으로 처리하기로 공모하여,

(가) 1999. 5. 29. 20:00경 위 지하실에서 피해자의 사체를 검안한 피고인 3은 사체검안서의 사망의 종류 란에 '자살', 선행 사인 란에 '약물 음독', 사고 종류 란에 '자살, 빙초산을 먹고 죽은 것으로 추정됨'이라고 기재하고 위와 같이 피해자의 우측 흉부, 양측 손등, 팔목, 양측 하지 및 안면부에 다발성 좌상 및 찰과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신체에 외상이 전혀 없는 것처럼 위 사체검안서 기타 신체 상황 란에 아무런 기재를 하지 아니하여 피고인 3 명의의 허위사체검안서 1통을 작성하고,

(나) 피고인 4는 같은 날 "1. 발생일시 및 장소 1999. 5. 28. 18:00 - 익일 16:30 어간, 대구에 있는 피고인 1 집 지하 방실 내, 2. 변사자 인적사항 성명 : 피해자, 주민등록번호 : 690830-생략,, 6. 현장 수사 : 플라스틱 우우병 1개를 발견하였으며 내용물이 빙초산 종류로 추정되고 1/5 정도 남아 있는 상태임, 7. 조치 : 변사체에 외상이 전혀 없고 타살 혐의점 발견할 수 없으며 유서 등으로 볼 때 자살한 것으로 판단되어 사체를 유족에게 인도코져 합니다. 1999. 5. 29. 형사과 형사계 근무 경사 피고인 4" 라는 내용의 허위공문서인 피고인 4 명의의 변사사건 발생보고서 1부를 작성하고, 같은 날 그 정을 모르는 형사반장 서명호에게 결재를 올려 이를 행사하고,

(다) 피고인 4는 위 같은 달 30일 경찰서에서에서 변사자 피해자 및 방안 내부를 촬영한 사진을 첨부한 피고인 명의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외상은 없는 상태임(사진촬영 4호), 변사자의 상·하의를 모두 벗긴 후 사체를 검시한 바 외상이 없는 상태임(사진촬영 5호), 외상이 없는 깨끗한 상태임(사진촬영 6호), 변사자 침대 밑에 우유병이 1개 떨어져 있는 장면, 빙초산 종류의 냄새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함(사진촬영 9호)"이라고 기재하여 허위공문서인 피고인 4 명의의 수사보고서 1부를 작성하고, 같은 날 그 정을 모르는 형사반장 서명호에게 결재를 올려 이를 행사하고,

(라) 피고인 4는 1999. 8. 2. 경찰서에서 "1. 발생일시 및 장소 1999. 5. 28. 18:00 - 익일 16:30 어간, 대구에 있는 피고인 1 집 지하 방실 내, 2. 변사자 인적사항 성명 : 피해자, 주민등록번호 : 690830-생략, 4. 현장상황 : 사체는 외상이 전혀 없고 변사자의 머리 위에 유서 3장이 발견되고 플라스틱 우유병 1개를 발견하였으며 내용물이 빙초산 종류로 추정되고 1/5 정도 남아 있는 상태임, 8. 조사자의견 : 현장에 임하여 사체 검시한 바, 변사체에 외상이 전혀 없고 타살 혐의점 발견할 수 없으며 유서 등으로 볼 때 미상의 약물(빙초산류)을 마시고 자살한 것으로 판단되며 내사종결처리코져 합니다. 수사과 형사계 근무 경사 피고인 4"라는 내용의 허위공문서인 피고인 4 명의의 변사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보고서 1부를 작성하고, 같은 날 그 정을 모르는 형사반장 서명호에게 결재를 올려 이를 행사하고,

(마) 피고인 2는 같은 달 30일 대구에 있는 관할동사무소에서 위 동사무소 직원인 함보경에게 위 허위작성검안서를 첨부한 매장, 화장신고서 및 화장장사용신청서를 제출하여 이를 행사하고,

(2) 피고인 2는 1999. 5. 29. 밤 시간 불상경 위 이천동 491의 59 소재 피고인 1의 집에서 피고인 3과 피해자의 사체를 화장하여 피고인 1의 형사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기로 공모하여, 피고인 3은 장의사 김종대에게 피해자의 화장을 의뢰하고, 피고인 2는 같은 날 위 함보경으로부터 발급받은 화장신고증 및 화장장 사용허가증을 위 김종대에게 교부하고 그로 하여금 대구시설관리공단 장묘사업소 담당 직원에게 제출하게 한 다음, 피해자에 대한 상해 및 변사사건과 관련하여 사망원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여부를 규명할 수 있는 피해자의 사체를 화장하게 하여 피고인 1의 형사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였다.

나.  원심의 판단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채용 증거에 의하여, 지하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피해자의 우측 흉부, 양측 손등, 팔목, 안면부 및 양측 하지 등 여러 곳에 좌상 및 찰과상이 있었던 사실이 인정되고, 피해자의 사체 주위에서 발견된 우유병에 담긴 액체는 빙초산이 아닐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그것을 마시고 자살하였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것이고, 피해자의 사체는 영양실조라고 생각될 만큼 마른 상태에서 팔뚝 등에는 많은 멍이 들어 있었고, 얼굴은 부어 있는 상태였으며 배변의 흔적이 있었다는 점, 현장에 있던 메모 3장은 피고인들이 유서라고 판단하였으나 메모지 3장의 필체가 조악하고 작성일자가 1999년 1월경으로 되어 있으며 자살하는 사람이 수개월 전에 유서를 작성하여 놓거나 그것도 같은 내용의 유서를 3장이나 작성한다는 것은 작성자가 정신장애자가 아닌 정상인이라 하여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 의학적으로 빙초산을 먹고 자살하는 경우 식도와 위가 부식되고 사람이 고통 속에서 죽어 간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것인데 사체에서는 그러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에 따르면 현장에서 발견된 우유병 속에 무색, 무취의 액체가 들어 있었을 뿐 빙초산은 물론 다른 독극물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여러 개의 빈방이 있는 큰 저택에서 사체가 어두운 지하실에 놓여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사망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약 20년 동안 검안 촉탁의로서 연간 40여 건의 검안을 실시한 경험이 있는 피고인 3이 피해자 사체를 검안한 후 빙초산을 음독하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은 다소 의문이 드는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인적구성의 면에서, 피고인 4와 전재필, 박규식은 경찰서 형사과 형사계에서 같은 조로 근무하는 경찰관들로서 이 사건 이전에 피고인 1과 특별한 인간관계가 생겼다고 볼 만한 자료는 없고, 더욱이 위 검안현장에는 피고인 4뿐만 아니라 전재필, 박규식 그리고 위 피고인 4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는 보이지 아니하는 김상현까지 참석한 상황이었음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 4가 피해자의 사인을 은폐하여 피고인 1을 비호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피고인 1, 2, 3과 공모하여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고자 하였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고, 나아가 피고인 3 역시 피고인 4, 전재필, 박규식, 김상현 등이 함께 피해자의 사체 및 그 현장을 살펴보았음에도 그 사인을 은폐하는 데 사용할 목적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허위의 검안서를 작성하였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② 박규식, 전재필, 김상현의 각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 3, 4가 피해자의 사인을 빙초산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하여 전재필, 박규식, 이동수, 김상현 중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과 이 사건과 관련하여 최초로 작성된 보고서로서 당시 이동수, 박규식, 피고인 3, 4 등이 의논하여 내린 결론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 판단되는 파출소장 이동수 명의의 '변사사건발생보고 및 지휘품신서'에도 피해자가 빙초산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 점, 피고인 3, 4가 현장에서 불상의 액체가 담겨 있는 우유병의 냄새를 맡은 사실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인 3이 피고인 1을 비호하기 위하여 사인을 은폐하고자 하는 범행에 가담할 만한 동기가 부족한 피고인 4와 공모하여 나지도 않는 식초 냄새가 위 우유병에서 났다고 그 현장에서 주장하였으리라고는 보기 어려운 점, 피고인 3, 4가 맡은 냄새가 위 우유병의 내용물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우유병의 외부에서 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점, 식초와 초산, 빙초산은 전혀 다른 물질이 아니고 그 희석의 정도에 따라 99%이상의 순도를 가지는 것을 빙초산, 30%이상의 순도를 가지는 것을 초산, 4%-6%의 순도를 가지는 것을 식용식초로 구분하는 것이라는 점, 피고인 4, 피고인 3이 빙초산이 어떠한 물질이고 빙초산을 마시면 어떠한 증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하여 이 사건 이전에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과연 피고인 3이 당시 위 우유병에 담긴 액체가 빙초산이 아닐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그것을 마시고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며, ③ 피고인 4는 이 사건 현장에서 수거한 우유병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 의뢰하였는데, 위 신창수가 이 사건 범행을 공모하고서도 무색, 무취의 중성 액체가 들어 있는 우유병을 그대로 감정의뢰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고, ④ 피해자의 사망현장에서 유서라고 추정한 쪽지 3장이 발견되었으나 그 쪽지가 묶여져 있던 전체의 묶음(공책 종류)은 발견되지 아니하였고, 수사기록에 편철된 현장사진에 비추어 보면, 위 쪽지 3장은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에 누군가가 자살을 가장하기 위하여 지하실에 가져다 놓은 것이고, 사체의 바지 또한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에 누군가가 갈아입힌 것이라는 의혹이 드는데, 위와 같이 쪽지 3장을 지하실에 가져다 놓거나 피해자의 바지를 갈아 입힌 상황에는 최소한 피고인 1은 관여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하고, 위와 같은 피해자의 사망현장 훼손은 그 설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인 1, 2이 함께 귀가한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⑤ 피고인 3이 사체를 검안하면서 피해자의 사체에 난 외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체검안서를 작성하면서 사인과 관계없는 기타 신체상황란에 아무런 기재를 하지 않은 것은, 피고인 3이 다른 변사사건에서 작성한 사체검안서의 기재에 의할 때 피고인 3이 사인을 추정하여 밝힌 사건의 사체검안서의 대부분에는 사인과 관계없는 신체상황에 대하여 기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어, 피고인 3이 사체검안서 상의 '사인과 관계없는 기타 신체상황란'에 피해자의 사체에 나타난 외상을 기재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위 피고인에게 허위검안서를 작성하고자 하는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첫째, 피고인 3의 허위검안서작성 부분에 대하여, 위 피고인이 사체검안서를 작성함에 있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 빙초산이 아닌 것으로 나타난 물질을 빙초산이라고 단정하고 나아가 위 피해자가 빙초산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재한 것은, 위 피고인이 업무상 기울여야 할 주의를 다하지 아니한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고는 인정할 수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들에 의하더라도 위 피고인이 이 사건 사체검안서를 작성하면서 그 내용이 허위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까지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둘째, 피고인 1, 2, 4의 허위검안서작성 및 허위작성검안서행사의 점에 대하여, 피고인 3의 허위검안서작성의 범행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위 피고인 1, 2, 4가 피고인 3과 공모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셋째, 피고인 1, 2, 3의 허위공문서작성 및 허위작성공문서행사의 점에 대하여, 피고인 4가 허위공문서를 작성하여 행사한 사실은 인정되나, 앞에서 본 여러 사정에 의하면 피고인 1, 2, 3가 피고인 4와 공모하였음을 인정하기는 어렵고, 넷째, 피고인 2의 증거인멸의 점에 대하여,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에 의하더라도, 피고인 2가 화장신고를 하여 화장신고증 및 화장장사용허가증을 교부받아 피해자의 사체를 화장하도록 한 사실만 인정될 뿐, 피고인 2가 피고인 1과 함께 피해자의 사체의 옷을 갈아 입히는 등으로 사인을 은폐하기로 공모하고 위 사체를 화장함으로써 위 피고인 1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각 무죄를 선고하였다.

다.  대법원의 판단

공모는 법률상 어떤 정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2인 이상이 공모하여 범죄에 공동가공하여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사의 결합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서, 비록 전체적인 모의과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수인 사이에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하여 그 의사의 결합이 이루어지면 공모관계가 성립하고, 이러한 공모가 이루어진 이상 실행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아니한 자라도 다른 공모자의 행위에 대하여 공동정범으로서 형사적 책임을 지는 것이다(대법원 1998. 3. 27. 선고 98도30 판결 참조).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심의 인정·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할 수 없다.

원심은 피고인 3의 허위검안서작성에 있어서의 범의 및 피고인들 사이의 공모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피고인 1과 특별한 인간관계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 피고인 4가 피해자의 사인을 은폐하는 데 공모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검안현장에는 피고인 4 외에 관할경찰서의 경찰인 전재필, 박규식 그리고 관할파출소 순경인 김상현까지 참석한 상황이었으며, 당시 검안현장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의 사인을 빙초산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바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1은 관할경찰서의 선진질서추진위원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관할경찰서와 공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오고 있고, 관할경찰서 교통과장인 신동수는 피해자의 사망 전날 및 그 이후를 비롯하여 수시로 피고인 1의 집에 들러 식사를 할 뿐만 아니라 사체가 발견된 지하방도 청소를 하는 등 피고인 1과 긴밀한 사이임을 알 수 있으며, 또한 관할경찰서장은 관할 파출소장인 이동수가 이 사건 변사사건을 보고하기 이전에 다른 경로를 통하여 이미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점에 비추어 피고인 1과 인적교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피고인 4는 관할 파출소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출동하였는데, 현장에서 장모인 피고인 1의 연락을 받고 온 피고인 3을 만나 피해자의 사체에 대한 검안을 요청하여, 피고인 3이 이 사건 검안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인바, 이는 피고인 4가 변사사건 발생보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면서 검안의사를 현장에 참여하도록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누군가의 사전 연락을 받고 이 사건 현장에는 검안의인 피고인 3이 미리 도착하여 있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

이와 같은 피고인 1과 관할경찰서 간부들과의 인적교류관계, 피고인 4가 변사사건의 현장에 출동하여 피고인 3에게 검안을 부탁하게 된 경위가 석연치 않은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인 4는 제3자를 통하여 피고인 1과의 사이에 피해자의 사체처리에 관한 암묵적인 의사의 합치가 있었음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고, 피고인 4가 평소 피고인 1과 교류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 1의 공모관계를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이 사건 현장에 피고인 4와 함께 출동한 관할경찰서 소속 경찰인 경장 박규식, 전재필은 그 직급이 경위인 피고인 4의 조원으로서 그의 지시, 감독을 받는 입장에 있고, 순경 김상현은 이 사건 현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관할파출소에서 파견된 자로 변사사건의 처리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입장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바, 이러한 인적 구성하에서 검안의인 피고인 3과 변사사건 처리권자인 피고인 4가 여러 가지 사유를 들어 피해자의 사인을 자살로 판단하였다면, 그 결론이 객관적으로 너무나 명백한 잘못이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 한 박규식, 전재필, 김상현 등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위 박규식, 전재필, 김상현 등이 피해자의 사인에 관하여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피고인 3의 허위검안서작성 및 행사에 있어서의 범의나 피고인 1의 공모관계를 부인하기 어렵다.

원심은 또 피해자의 사망현장은 누군가에 의하여 조작, 변경된 것으로 보이고, 그 조작과 변경에는 최소한 피고인 1의 관여가 있다고 보이나 그 시기는 피고인 1, 2가 함께 귀가한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즉 피고인 1, 2가 함께 귀가하기 이전에 최소한 피고인 1의 관여 아래 미리 사망현장이 조작, 변경되었으니, 피고인 4나 피고인 3 등이 사건 은폐를 위한 피고인 1의 의도에 따라 허위공문서나 허위검안서를 작성하게 되었을 뿐 공모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 설시한 바와 같이 공모는 2인 이상이 공모하여 범죄에 공동가공하여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사의 결합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서, 비록 전체적인 모의과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수인 사이에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하여 그 의사의 결합이 이루어지면 공모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므로, 가사 원심의 판단과 같이 이 사건 사망현장이 피고인 1의 관여 아래 조작되고 변경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얼마든지 피고인 4나 양문석과 사이에 피해자의 사인을 자살로 처리하기로 하는 내용의 암묵적인 합의 내지 의사의 합치는 가능한 것이므로 원심이 내세우는 사정은 공모관계를 인정할 수 없는 자료로 보기에는 적절치 않다 할 것이다.

한편, 원심도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장에 있던 메모 3장은 그 필체가 조악하고 작성일자가 1999년 1월경으로 되어 있으며 자살하는 사람이 수개월 전에 유서를 작성하여 놓거나 그것도 같은 내용의 유서를 3장이나 작성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 사체에는 빙초산을 먹고 자살하는 경우에 나타나는 화상이나, 고통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고, 실제로도 현장에서 수거된 우유병에는 무색, 무취의 액체가 들어 있었을 뿐 빙초산은 물론 다른 독극물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사체에 크고 작은 상처가 여러 군데 발견되었고, 배변의 흔적도 있었다는 점과 피고인 3 자신도 누군가가 사체의 옷을 갈아 입혀 놓은 것 같았다고 말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의 사인을 자살이라고 쉽게 단정짓기에는 어려워 보이는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변사사건을 처리하였음직한 피고인 4나 피고인 3이 피해자의 사망을 쉽사리 자살로 결론을 내리고, 또한 허위공문서나 허위검안서를 작성하는 등으로 피해자의 사체를 화장하는 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처음부터 미리 사건을 자살로 처리하기로 결론을 내고 검안은 형식적으로 그 결론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심을 떨쳐 버리기 어렵고, 피고인 4의 경우 사전에 누군가에 의한 의사연락을 통한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는 것 외에는 위와 같이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특별한 동기도 발견되지 않는다.

더욱이 피고인 3은 피고인 1의 사위로서 위 피고인의 연락으로 현장에 도착하여 그 경위를 들은 다음, 사후에 도착한 피고인 4의 요청으로 피해자의 사체를 검안하게 되었고, 이를 기초로 작성한 사체검안서가 객관적인 사실에는 반하는 점은 원심도 인정하는 바이고,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3은 수사기관에서 '빙초산을 마시고 자살한 사람에게 어떤 소견이 나타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공부를 하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답변하고, 또 '화상이 생기지 않을 정도의 약한 농도의 초산을 먹어도 사람이 사망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대답을 하지 못하는 등(수2-1, 317면) 빙초산을 마시고 사망하는 경우의 소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바, 따라서 빙초산의 성상이나 이를 마시고 사망하는 경우의 소견에 대하여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약물음독', '빙초산을 먹고 자살하였다.'는 취지로 사체검안서를 작성한 것은 그 자체가 허위에 대한 인식이 있는 것이라고 볼 것이고, 나아가 20년간 사체검안의로 활동한 위 피고인으로서는 그가 작성한 허위의 사체검안서가 어떠한 목적에 행사되리라는 점도 능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것이다.

그 밖에 피고인 피고인 2는 관할경찰서의 선진질서추진위원회 총무로 활동하여 피고인 1이나 관할경찰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오고 있고, 이 사건의 피해자의 사체를 최초로 발견한 시점부터 이튿날 화장에 이르기까지 피고인 1의 요청으로 전화연락을 취하거나 화장절차를 진행하고, 사후에도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된 지하실 방을 청소하는 등 피고인 1과 함께 행동해 왔다는 점, 피고인 3은 피고인 1의 사위로서 관할경찰서의 촉탁의로 20년 이상 활동해 왔고, 피고인 4와도 10년 이상 알고 지내는 사이이며 피고인 4와 함께 피해자의 사망을 자살로 결론을 내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는 점 등 피고인들의 관계도 공모에 의한 사건 처리라는 의심이 들게 할 충분한 사정이 된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피고인 1과 관할경찰서 간부들과의 인적 교류관계 등에 비추어 피고인 4와 사이에 제3자에 의한 의사연락의 가능성은 없었는지, 피고인 4가 이 사건 현장에 출동하게 된 경위와 그 출동과정에서 검안의와 관련하여서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였는지 또 피고인 4와 함께 현장에 출동한 박규식, 전재필, 이천파출소의 파견 순경인 김상현 등의 현장에서의 각 역할과 피고인 4가 변사사건에 관한 결론을 내림에 있어서 관여한 정도 및 피고인 4가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게 된 동기 등을 좀 더 상세히 조사하여 피고인 3의 허위검안서 작성에 관한 범의 및 이 사건 각 범행에 관한 피고인들의 공모여부를 따져 보았어야 할 것임에도 그 판시와 같은 사유만으로 피고인 3이 허위 내용의 사체검안서를 작성함에 있어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이 사건 각 범행에 관하여 피고인들이 공모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말았으니, 이는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아니한 채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하였거나 허위검안서작성죄에 있어서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검사의 상고이유는 이유 있다.

라.  그 밖에 검사의 검시방해의 점에 대한 판단유탈 주장은 공소장변경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내용에 대한 주장으로 그 이유 없다.

3.  그렇다면 원심판결 중 피고인 2, 3에 대한 부분과 피고인 1, 4에 대한 무죄부분은 모두 파기를 면하지 못할 것인바, 피고인 1의 유죄부분에 대한 상고가 이유 없음은 앞에서 판단한 바와 같으나, 원심이 피고인 1에 대하여 유죄로 인정한 각 죄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무죄로 인정한 죄는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으므로 피고인 1에 대한 원심판결의 유죄부분도 위에서 본 무죄부분과 함께 파기되어야 할 것이다( 피고인 4에 대하여 위 파기되는 무죄부분은 위 피고인에 대한 원심판결의 유죄부분과는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의 관계에 있으나, 검사만이 무죄부분에 대하여 상고를 하였으므로 위 피고인과 검사가 상고하지 아니한 유죄부분은 상고기간이 지남으로써 확정되어 상고심에 계속된 사건은 무죄판결 부분에 대한 공소뿐이므로 위 무죄 부분만을 파기할 수밖에 없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인 1, 2, 3에 대한 부분과 피고인 4에 대한 무죄부분을 각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케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손지열(재판장) 송진훈 윤재식(주심) 이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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