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피고 주식회사(소송대리인 변호사 은상길)
2006. 6. 22.
1. 원고(선정당사자)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선정당사자)가 부담한다.
피고는 선정자들에게 별지 미지급금품 내역서의 총액란 기재 각 돈 및 그 중 미지급임금에 대하여 2004. 4. 1.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1. 기초사실(다툼없음)
가. 피고는 현대자동차주식회사(이하 ‘현대자동차’라고만 한다)의 협력업체로서 현대자동차 울산 제1ㆍ2ㆍ3ㆍ4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량의 차체(뼈대)를 만드는 부품 등을 주로 제조하다가 2005. 2. 25.자로 폐업한 회사이고, 원고를 포함한 선정자들은 피고의 폐업으로 같은 달 28일 퇴사한 근로자들이다.
나. 자동차는 주기가 있어서 협력업체로서는 수주한 아이템이 단종 되면 새로운 아이템을 수주해야 계속해서 생산라인을 가동할 수 있는바, 2004. 8.경에 현대자동차에서 아반떼의 후속제품인 씨엠, 같은 해 11월경에 베르나 후속제품 등 신규 아이템 2개에 대하여 공개입찰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 피고는 2002년경 그 노동조합인 전국금속노동조합 (명칭 생략)지회(이하, ‘노조’라 한다)와 매년 4월 1일을 기준으로 임금단체협상을 해왔는데, 2004년 임금단체협상시 노조가 전국금속노동조합에서 정한 기준금액(125,445원)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강행하여 결국 피고는 2004. 9. 10. 노조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합의서(갑제2호증)를 작성하였다.
(1) 기본급 월65,000원 인상(시급:271원). 회사는 차기 아이템 수주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며 만약 아이템을 수주하지 못할시 금속노조 요구안인 125,445원(시급:523원)으로 인상한다(이하, 이 부분 약정을 ‘이 사건 합의’라 한다).
(2) 단, 아이템 수주를 못하였다는 판단은 다음과 같이 한다.
(가) 회사가 신규아이템을 수주 못하였다고 조합 또는 현장에 이야기할 때
(나) 회사가 전 직원의 고용을 계속적으로 이어나가지 못하고 고용불안을 느낄 때
(3) 소급시기는 2004. 4. 1.부로 소급 적용한다.
라. 피고는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자동차의 공개입찰에 참여하였으나, 노무비 때문에 납품단가가 경쟁업체보다 높아 입찰에서 탈락하였고, 11월에 있었던 입찰에서도 같은 이유로 탈락하여 결국 신규아이템 수주에 실패하였다.
마. 그리하여 피고는 기존 아이템에 관한 부품만을 납품할 수 밖에 없어 그 운영이 더욱 어려워지던 차에 현대자동차가 그동안 피고로부터 납품받던 부품마저 2004. 10.경부터 다른 업체에게 개발을 의뢰하여(피고 소속 근로자들의 연례적인 파업으로 부품의 정상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생산라인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비밀리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계약관계마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바. 이 사건 합의 당시 노동조합과 회사는 이후 고용보장을 위해 노사 공동으로 물량수주를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는데, 노조는 그 합의가 있은 후 2달만인 11월경부터 현대자동차의 이중개발소문에 대한 진상규명, 계속되는 고용불안 및 그에 대한 회사의 대책 등을 주제로 새로운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출근투쟁을 시작하였고, 2005. 1. 20.경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통해 총파업을 결의하였다.
사. 신규아이템 수주 실패, 현대자동차의 이중개발, 노조의 격한 쟁의행위 등으로 더 이상 정상적인 회사운영이 불가능하자, 피고는 결국 87억 원의 어음을 부도 내고 2005. 2. 25. 폐업 하였고, 다음 달 28일 피고 소유이던 토지와 건물 등을 전부 매각하여 원고를 포함한 선정자들에게 기본급 월 65,000원 인상을 기준으로 하여 계산한(별지 미지급금품 내역서의 총액란 기재 각 금액을 제외한)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였다.
2. 당사자들의 주장
원고는 이 사건 합의를 근거로, 피고가 신규아이템 수주에 실패한 이상 약정 인상분 월125,445원으로 산출한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월 65,000원으로 계산한 임금과 퇴직금만 지급하였다고 하면서 그 차액의 지급을 구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위 합의는, (1) 회사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운 상태에서 현저히 불공정한 조건으로 합의된 것으로서 무효이고, (2) 현대자동차측의 신규 물량 확보, 손해보전 등의 구두약속을 믿고 합의한 것이었는데 현대자동차측이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망행위에 의한 의사표시로 취소하며, (3) 노조가 특별한 이유 없이 2004. 11.에 재교섭을 요구하며 출근투쟁을 하다가 다음 해 1월에 총파업을 한 것은 합의 조건을 위배한 것이므로 그 효력이 없다고 다툰다.
3. 판 단
가. 이 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합의’의 효력이라고 할 것인바, 노사 간의 합의가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였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그러한 합의는 무효라 할 것이고, 단체협약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였는지 여부는 단체협약의 내용과 그 체결경위, 당시 사용자측의 경영상태 등 여러사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 2000. 9. 29. 선고 99다67536 판결 등).
나. 이 사건 합의의 요지는 ‘회사가 차기 아이템 수주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되 만약 아이템을 수주하지 못할시 금속노조 요구안인 125,445원(시급:523원)으로 인상한다’는 것인데, 자동차부품회사의 경우 신규 아이템의 수주 실패는 회사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어려운 상황인데도 그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근로자들의 임금을 소급해서 인상하기로 하는 내용의 합의를 하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것으로서, 특별히 이를 수긍할만한 사정이 없는 한,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였다고 할 것이다.
이에 이러한 합의가 이루어진 경위를 살펴보건대, 갑 1ㆍ2ㆍ15ㆍ16호증, 을 1호증의 1 내지 5ㆍ8ㆍ11 내지 24ㆍ25ㆍ26ㆍ27ㆍ28(일부 믿지 않는 부분 제외)ㆍ31호증의 각 기재 및 증인 소외인의 증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 사실이 인정된다.
(1) 피고는 현대자동차의 신규 아이템 공개입찰에서 선정되기 위해 공급단가를 계속 낮추었던 반면, 파업을 통한 노조의 요구로 임금은 인상되어 2000년경부터 적자가 누적되었다.
(2) 2004년 임금단체협상시 노조는 전국금속노조에서 정한 금액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다가 파업을 강행하여 공장가동이 10여일 이상 중단되었고, 결국 피고가 현대자동차에 납품을 못하게 되자 현대자동차의 전 생산라인도 하루 반이나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현대자동차로서는 생산라인이 하루만 중단되어도 100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보는 상황이었다.
(3) 이에 현대자동차측 임원 등 50여명이 피고 회사를 방문하여 ‘파업이 장기화되면 협력업체계약을 해지할 수 밖에 없다. 노사간 합의를 하고 생산라인이 정상화되면 기존계약을 유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고 신규 아이템을 주거나 손해를 보전해 주겠다’며 합의를 종용하였다(협력업체 근로자의 파업이 장기화되는 경우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협력업체에게 유형ㆍ무형으로 압력을 행사하여 노사관계가 정상화될 것을 촉구하는 것은 관행적으로 내려 왔다).
(4) 또한 현대자동차측은 ‘이 사건 합의안이 상식에 반하는 면이 있으나, 그 안을 수용해도 별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의견을 피고에게 제시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피고가 신규 아이템을 수주할 것을 당연시 하여 당초 노조의 임금 인상안(월 125,445원)이 적용될 여지가 없을 것임을 전제한 것이었다.
(5) 현대자동차의 협력업체인 피고로서는 노사관계의 악화로 납품이 계속해서 차질이 빚어질 경우 협력관계가 해지되거나 신규 아이템 공개입찰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또한 당시의 파업으로 제때에 납품하지 못하여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수도 있는 등 회사자체가 존립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위와 같이 상식에 반하는 내용의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6) 그러나 이 사건 합의 이후, 피고는 현대자동차의 이중개발, 신규 아이템 수주 실패, 노조의 총파업결의 등으로 결국 2005. 2. 25.자로 폐업을 하였다(노조는 폐업이후에도 9월경까지 장기간 회사를 점거하며 농성을 계속하다가 피고 소유이던 토지와 건물을 매수한 조일공업주식회사로부터 150,000,000원을 지급받은 후에야 그 설비를 넘겨주었다).
다. 위에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합의는 회사가 신규 아이템을 수주하지 못할 시 폐업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임을 예상한 근로자들이 회사 폐업시 오로지 더 많은 임금을 소급해서 챙기고자 하는 전형적인 ‘제 몫 챙기기’로 만들어 넣은 것이고, 피고로서는 그러한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으면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궁박한 상태에서 이 사건 합의에 이르게 된 것으로, 그 내용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여 무효라 할 것이다.
또한, 이 사건 합의가 실현될 경우, 피고는 합의의 상대방인 근로자들에게 인상분인 월 125,445원씩의 임금을 소급하여 지급해야 하는 반면, 피고에게는 아무런 반대급부도 없고 오히려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될 뿐이어서 이 사건 합의는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있어 불공정한 법률행위로서 역시 무효이다.
더구나, 이 사건 합의가 있은 후 2달만인 11월경에 노조가 단체교섭사항이 아닌 주제로 재교섭을 요구하며 출근투쟁을 하다가 다음 해 1. 20.경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통해 총파업을 결의한 것은 이 사건 합의 당시 향후 노사 공동으로 물량 수주에 노력하기로 한 합의 사항을 위배한 것이므로 이 점에서도 노조는 이 사건 합의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 할 것이다.
피고의 대표이사가 이 사건 합의를 근거로 한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위반죄로 벌금 2,000,000원에 처해졌다는 사실은 이러한 판단에 장애가 되지 아니한다.
원고의 주장은 어느 모로 보나 이유 없다.
4. 결 론
결국, 이 사건 합의가 유효함을 전제로 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지 선정자 명단 및 미지급품내역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