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998. 10. 13. 선고 98다18520 판결

대법원 1998. 10. 13. 선고 98다18520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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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의)][집46(2)민,172;공1998.11.15.(70),2665]

판시사항

[1]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요건 및 위법성의 판단 기준

[2] 에이즈 검사 결과 양성으로 판정된 후 자의로 보건당국의 관리를 벗어난 특수업태부에 대하여 그 후 국가 산하 검사기관이 실시한 일련의 정기검진 결과 중에서 일부가 음성으로 판정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 검사기관이 이를 본인에게 통보하지 않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도 없었던 사안에서, 국가의 위자료 지급의무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1]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공무원의 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이 그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라고 하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인바, 여기서 '법령에 위반하여'라고 하는 것이 엄격하게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명시적으로 공무원의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데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에 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을 보호하는 것을 본래적 사명으로 하는 국가가 초법규적, 일차적으로 그 위험 배제에 나서지 아니하면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와 같은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공무원이 관련 법령을 준수하여 직무를 수행하였다면 그와 같은 공무원의 부작위를 가지고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에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작위의무를 명하는 법령의 규정이 없다면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하여 침해된 국민의 법익 또는 국민에게 발생한 손해가 어느 정도 심각하고 절박한 것인지, 관련 공무원이 그와 같은 결과를 예견하여 그 결과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2]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의 제정, 시행 이전에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특수업태부를 대상으로 에이즈 바이러스 항체검사를 실시하는 내용의 국가의 에이즈관리시책에 의거하여 미군기지촌에서 특수업태부로 종사하고 있던 수검자에 대하여 국립보건원에서 에이즈 바이러스 항체검사를 실시한 결과 양성으로 판정되어 국가가 위 수검자를 감염자로 분류하였는데 그 후 위 수검자가 보건당국의 관리를 벗어나 자의로 법이 취업을 금지한 업종에 종사하며 수차 정기검진을 받게 되었고 그 정기검진 중 일부인 전남보건환경연구원, 제주보건환경연구원, 국립보건원에서 지역 보건소 등의 의뢰에 의하여 실시한 항체검사 결과에서는 음성으로 판정되었으나 위 기관에서는 그 검사를 의뢰한 기관에 대하여만 그 결과를 통보하였고, 위 수검자 본인에게는 이를 알려주지 않았던 사안에서, 관계 법령을 종합하여 볼 때 정기검진 대상자가 검진 결과 음성 판정을 받게 된 경우 검사기관에서 그에 대한 확인검사를 시행하여야 할 법령상의 근거가 없는 점, 위 수검자가 검사 결과 건강진단수첩을 교부받고 그 이후 검사기관으로부터 별도로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통지를 받지 아니하게 되면 수검자는 그로써 자신이 항체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음을 알았다고 볼 소지가 있는 점, 수검자가 보건당국의 관리를 벗어나 자의로 법이 취업을 금지한 업종에 종사하며 정기검진을 받다가 종전의 양성 판정과 모순된 음성 판정을 접하는 경우에 받게 될 정신적인 손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국가가 모든 항체검사 대상자에 대하여 종전의 검사 결과를 대조할 작위의무까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 등의 이유로, 위 음성 판정을 한 기관에서 위 수검자에 대하여 그 검사 결과를 전혀 알려주지 않았고 그 판정의 모순점에 대한 정확한 재검사 및 재판정 절차 없이 형식적으로 정기적인 검사와 판정을 되풀이한 관리 및 검사·판정상의 잘못이 있음을 전제로 하여 위 수검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국가의 위자료 지급의무를 인정하였던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원고,피상고인

원고

피고,상고인

대한민국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원심의 판단

이 사건에서 원고는 피고 산하 국립보건원이 1987. 4. 27. 원고에 대하여 최초로 실시한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이하 에이즈 바이러스라고 한다) 항체검사를 실시함에 있어서 검사 결과 위양성(위양성) 반응이 나타난 것을 양성으로 속단하여 재확인검사를 거치지 아니하고 성급하게 양성 판정을 내린 잘못이 있고, 설령 양성 판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이후 피고 산하 전남 보건환경연구원이 1991년에, 제주 보건환경연구원이 1993년에 각 원고의 혈액에 대한 에이즈 바이러스 항체검사를 양성 판정과 모순되게 음성 판정을 하여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으므로 피고는 금전으로 이를 위자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을 하였고, 원심은 1987. 4. 27.의 양성 판정이 오류인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하여 원고의 그 부분 주장을 배척하고(대법원은 원심의 그와 같은 판단은 옳다고 본다), 한편 모순된 판정을 이유로 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모순된 판정과 관련하여 원심이 인정한 사실 및 그에 대한 원심의 판단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가. 원심이 인정한 사실

(1) 후천성면역결핍 증후군(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이하 에이즈라고 한다)은 에이즈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 속에 침입하여 인간의 면역체계를 파괴시켜 면역기능을 저하시킴으로써 건강한 사람에게는 발병하지 아니하는 각종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을 야기시키고, 에이즈 바이러스에 의하여 에이즈 증세가 발현되면 거의 2년 안에 그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현재까지의 의학수준으로는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는 불가능하고 에이즈 발병을 저지하거나 그 발현 시기를 늦추는 정도의 치료만이 행하여지고 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그 국민들로 하여금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도록 홍보하고,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아니하도록 예방책을 주지시키는 등의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2) 피고는 1985년경 국내에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이하 감염자라고 한다)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을 계기로 에이즈가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되기에 이르자 에이즈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계몽 등 사전예방정책을 수립하고, 감염자의 발생 상황을 신속·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공인된 검사기관에서 과학적으로 타당성이 입증된 검사방법과 판정기준에 따라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이를 통하여 발견된 감염자에 대한 보호 및 치료체계를 구축하고 그 감염자들을 통하여 건강한 사람들이 성행위, 수혈, 혈액제제(혈액제제)복용, 주사(주사) 등을 통하여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방지하는 등 거시적 대응책을 입안하고 실행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수호하기 위하여 1987. 11. 28. 법률 제3943호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이하 '법'이라고 한다)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3) 피고는 법이 제정·시행되기 전부터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특수업태부를 대상으로 하여 에이즈 바이러스 항체검사를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피고 산하 전남 광산군 보건소는 피고의 에이즈 관리시책에 의거하여 1987. 3. 10. 당시 같은 군 용보리 미군기지촌에서 특수업태부로 종사하고 있던 원고(1962. 10. 11.생의 여성)의 혈액을 채취한 다음 국립보건원에 에이즈 바이러스 항체검사(이하 항체검사라고 한다)를 의뢰하였는데 같은 해 4. 27. 그 결과가 양성으로 판정되었다(이하 1987. 항체검사 판정이라고 한다). 그에 따라 피고는 원고를 감염자로 분류하여 현재까지 원고에 대하여 6개월마다 정기적인 면역기능검사 및 항체검사, 보건교육, 전파방지를 위한 건강관리상담 등을 시행하고 있다.

(4) 1987. 항체검사 판정에 의하면 원고는 자신이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이므로 공중접객업, 특수업태부 등의 업소에 종사할 수 없는데도 원고는 그 이후 1994. 12. 27.까지 사이에 광주시, 전남 보성군, 영광군, 나주시, 제주도 등으로 거주지를 옮겨 다니며 다방종업원, 술집 접대부, 유흥업소 종업원 등으로 종사하면서 피고 산하 보건소, 보건환경연구원, 국립보건소 등에서 정기적인 면역기능검사 및 12회에 걸친 항체검사를 받았는데 다음에서 보는 3차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1987년의 판정과 동일하게 양성 판정이 나왔다.

(가) 피고 산하 전남 보건환경연구원은 1991. 3. 24. 광주 동구 보건소의 의뢰를 받고 원고의 혈액에 대한 항체검사를 실시하여 같은 해 5. 23. 음성으로 판정하였다(이하 1991. 3. 항체검사 판정이라고 한다).

(나) 피고 산하 국립보건원은 같은 해 7. 15. 전남 보건환경연구원의 의뢰를 받고 원고의 혈액에 대한 항체검사를 실시하여 같은 달 19. 양성 판정을 하였는데, 담당직원이 검사 결과통보서(을 제2호증의 4)에 그 결과를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소외 인 외 5인에 뒤이어 연달아 원고에 대한 항체검사 결과를 음성으로 잘못 기재한 탓으로 같은 달 29. 전남 보건환경연구원에 원고의 혈액에 대한 항체검사 결과를 음성으로 잘못 통보하였다(이하 1991. 7. 항체검사 판정과 통보라고 한다).

(다) 피고 산하 제주 보건환경연구원은 1993. 11. 6. 제주시 보건소의 의뢰를 받고 원고의 혈액에 대한 항체검사를 실시하여 같은 달 9. 음성으로 판정하였다(이하 1993. 항체검사 판정이라고 한다).

(5) 전남 보건환경연구원, 제주 보건환경연구원, 국립보건원은 모두 항체검사 결과 음성 판정이 나온 위와 같은 사례에 있어 검사를 의뢰한 기관에 대하여만 그 결과를 통보하였고, 감염자 본인인 원고에게는 이를 알려주지 아니하였다. 원고는 1995. 4. 21. 무렵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추적 60분'이라는 프로그램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원고의 혈액에 대한 항체검사에서 위와 같이 음성으로 판정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6) 현재 원고는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이다.

(7)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감염 여부는 피검사자로부터 채취한 혈액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 그에 대응하여 인체의 면역기구가 만들어 낸 항체{항 에이즈 바이러스 면역 글로블린G(Anti-HIV Ig G)}의 존재 여부를 측정함으로써 판단하고 있다.

그 중 효소면역측정법(Enzyme-Linked Immunosorbent Assay, ELISA)과 웨스턴블럿(Western Blot) 방식이 대표적인 항체검사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효소면역측정법은 항체의 측정시 표지로서 효소(Enzyme)를 사용하는 방법으로서 효소표지 항원(또는 이차 항체)이 효소 활성도를 측정하기 전에 효소표지된 항원-항체의 복합체와 분리되는 원리에 따른다. 웨스턴블럿 방식은 단백질 복합체를 전하/질량의 비율을 일정하게 하여 시험에서 요구되는 특정 결정요인을 분자량 차이에 의하여만 분리되도록 하는 전기영동법과 단백질 등 고분자물질을 겔(gel)로부터 각종의 고정면(immobilizing matrix)으로 이동시키는 블럿팅(blotting) 방식을 응용하는데, 효소면역측정법보다 특이도가 높아 오류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종종 확인시험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으나, 위 검사방법에 따를 때 나타나는 밴드(band)의 분자량에 관하여는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아니하다.

나. 원심의 판단

(1) 1991. 7. 항체검사 판정과 통지에 대하여

피고 산하 국립보건원은 원고에 대한 항체검사를 실시한 결과 양성 판정이 나왔는데도 검사 의뢰기관에 그 결과를 통지하면서 다른 음성 판정을 받은 피검사자 명단을 작성할 때 양성 판정을 받은 원고를 포함시켜 통보함으로써 행정적 착오를 일으킨 잘못은 있으나 원고에게 음성 판정으로 통보한 바가 없어 이로 인하여 원고가 판정 결과에 의구심을 갖게 되는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2) 1991. 3.과 1993. 항체검사 판정 및 후속조치의 결여에 대하여

그러나 전남 보건환경연구원과 제주 보건환경연구원은 원고에 대한 항체검사 결과를 각 음성으로 판정하여 종전에 원고에 대하여 실시하였던 일련의 항체검사 결과와 상이한데다가 일단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에는 그 치유가 불가능하므로 양성 판정 후 음성으로 변화하는 경우는 거의 발생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현대의학상 설명하기 어려운 판정이 나온 경우에 해당되므로 마땅히 그 결과에 대하여 가장 직접적인 이해를 가지는 원고에게 즉시 그 결과를 통보하고, 원고와 상호 협력하여 재확인검사를 실시함으로써 위와 같은 상이한 결과가 나오게 된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 결과를 원고에게 설명하여 주어 원고로 하여금 피고측의 항체검사 및 결과 판정과 감염자에 대한 보호 및 관리 체계에 대하여 불신감과 의구심이 들지 아니하도록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남 보건환경연구원과 제주 보건환경연구원은 원고에게 그 결과를 전혀 알려 주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판정의 모순점에 대한 정확한 재검사 및 재판정 절차 없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아니한 채 형식적으로 정기적인 검사와 판정을 되풀이 한 관리 및 검사·판정상의 잘못이 있다.

이로 인하여 원고는 1995. 4. 21. 무렵에야 비로소 전남 보건환경연구원 등의 원고의 혈액에 대한 항체검사 중 일부 결과가 음성으로 판정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과연 1987. 항체검사 판정이 정확한 것이었는지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으며, 그에 따라 자신이 1987. 당시 에이즈 바이러스에 실제로 감염되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아니하였는데도 피고의 잘못된 양성 판정 결과를 통보받고 자포자기한 상태로 특수업태부, 다방종업원, 술집 접대부 등으로 계속 종사한 탓으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계속적인 의구심을 가지게 됨으로써 적지 않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이를 금전적으로 위자할 의무가 있다.

2. 대법원의 판단

가.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

원심이 피고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전남 보건환경연구원과 제주 보건환경연구원, 또는 피고가 1991. 3.과 1993. 항체검사 판정에 따라 원고에 대한 통보와 확인검사 및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아니한 것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이 정하는 국가배상책임 요건을 충족시킨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공무원의 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이 그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라고 하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법령에 위반하여'라고 하는 것이 엄격하게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명시적으로 공무원의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데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에 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을 보호하는 것을 본래적 사명으로 하는 국가가 초법규적, 일차적으로 그 위험 배제에 나서지 아니하면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와 같은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공무원이 관련 법령을 준수하여 직무를 수행하였다면 그와 같은 공무원의 부작위를 가지고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이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에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작위의무를 명하는 법령의 규정이 없다면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하여 침해된 국민의 법익 또는 국민에게 발생한 손해가 어느 정도 심각하고 절박한 것인지, 관련 공무원이 그와 같은 결과를 예견하여 그 결과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나. 관련 법령의 규정

법은 에이즈의 예방과 그 감염자의 보호·관리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건강의 보호에 기여함을 목적으로(법 제1조) 1987. 11. 28. 제정되어 60일이 경과한 후부터 시행되었다. 법 제3조 제1항, 제3항은 국가에 대하여 에이즈의 예방과 감염자의 보호·관리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며 예방에 필요한 지식을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홍보하고, 감염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그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며, 법에서 정한 이외의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대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책무를 지우는 한편, 같은 조 제2항은 국민에 대하여도 국가가 법에 의하여 행하는 조치에 적극 협력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법 제8조 제1항은 보건복지부장관·도지사·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은 '공중과 접촉이 많은 업소에 종사하는 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에 대하여 에이즈에 관한 정기 또는 수시검진을 실시하여야 한다(1988. 12. 31. 법률 제4077호로 개정되기 전에는 '실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었음)고 규정하고, 법시행령 제10조 제1항은 법 제8조 제1항에서 '공중과 접촉이 많은 업소에 종사하는 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라 함은 전염병예방법 제8조 제2항 의 규정에 의하여 성병에 관한 건강진단을 받아야 할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법시행령 제11조는 법 제8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정기검진은 성병에 관한 건강진단과 동시에 실시하되, 그 실시회수 및 절차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법시행규칙 제5조는 법시행령 제11조의 규정에 의한 정기검진은 위생분야종사자등의건강진단규칙 (1984. 9. 8. 보건사회부령 제754호로 제정되어 최종적으로 1998. 1. 10. 보건복지부령 제58호로 개정된 것. 이하 진단규칙이라고 한다)에 의한 혈청검사시에 6월 간격으로 연 2회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 전염병예방법(1983. 12. 20. 법률 제3662호로 개정되어 1997. 12. 13. 법률 제545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조 제2항 은 성병의 예방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직업으로서 보건사회부령이 정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자는 보건사회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성병에 관한 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이를 이어받은 진단규칙 제2조 제2호는 '특수업태부'라 함은 성병의 예방을 위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이 특별히 인정하는 자를 말한다고 하고{1993. 7. 27. 보건사회부령 제91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은 '특수업태부'라 함은 식품위생법시행령 제7조 제7호 (나)목의 규정에 의한 외국인 전용 유흥음식점 영업에 종사하는 유흥종사자 중 동시행령 제8조 제1항 제1호의 유흥접객부 및 제2호의 댄서와 그 밖에 상습적으로 윤락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여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1988. 7. 4. 보건사회부령 제82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은 '특수업태부'라 함은 식품위생법시행령 제9조 제1항 제3호 의 규정에 의한 외국인 전용 유흥음식점 영업에 종사하는 유흥종사자 중 식품위생법시행규칙 제18조 제1항 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는 자와 그 밖에 상습적으로 윤락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여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제3호는 '유흥접객원 등'이라 함은 식품위생법시행령 제7조 제8호 (라)목 및 동령 제8조 제1항 제1호 ·제2호의 규정에 의한 유흥주점영업에 종사하는 유흥종사자 중 유흥접객원 및 댄서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1993. 7. 27. 보건사회부령 제91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은 '접객부'라 함은 식품위생법시행령 제7조 제7호 (나)목의 규정에 의한 일반 유흥음식점 또는 무도유흥음식점 영업에 종사하는 유흥종사자 중 동시행령 제8조 제1항 제1호의 유흥접객부 및 제2호의 댄서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1988. 7. 4. 보건사회부령 제82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은 '접객부'라 함은 식품위생법시행령 제9조 제1항 제1호의2 또는 제2호의 영업에 종사하는 접객부와 동 조항 제3호의 규정에 의한 일반 유흥음식점 또는 무도유흥음식점 영업에 종사하는 유흥종사자 중 식품위생법시행규칙 제18조 제1항 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진단규칙 제3조는 전염병예방법 제8조 제2항 의 규정에 의하여 성병에 관한 건강진단을 받아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자와 그 진단 항목 및 회수는 [별표 1]과 같다고 규정하고, 진단규칙 [별표 1] '성병 건강진단 대상자 및 진단 항목별 회수'에 의하면 '특수업태부'와 '유흥접객원 등'은 각 3개월에 1회, 다방 형태의 영업에 종사하는 여자종업원은 6월에 1회 혈청검사를 받아야 하도록 되어 있다(1998. 1. 10. 보건복지부령 제5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은 다방 형태의 영업에 종사하는 여자종업원은 3월에 1회 혈청검사를 받아야 하도록 되어 있었다.).

법시행규칙 제7조 제2항은 검사기관은 검사 결과 감염이 의심되는 가검물을 발견한 때에는 국립보건원장에게 검사를 의뢰하여 확인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감염이 의심되는 가검물 이외의 가검물에 대하여 확인검사를 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고, 법시행규칙 제9조는 국립보건원장은 법시행규칙 제7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검사기관 또는 의료기관 등으로부터 에이즈 감염 여부의 확인검사를 의뢰받은 때에는 지체 없이 검사를 실시하고 검사 결과를 의뢰기관에 통지하며, 감염사실을 발견한 때에는 즉시 보건사회부장관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법 제12조는 법 제8조의 규정에 의한 검진을 받은 자에 대하여는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결과를 나타내는 증명서를 발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법시행규칙 제11조 제1항은 그 본문에서 법 제8조의 규정에 의하여 검진 대상자가 검진을 받은 경우, 검진을 실시한 검사기관의 장은 별지 제7호 서식에 의한 에이즈검사확인서를 발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단서에서 다만, 법 제8조의 규정에 의한 정기검진 대상자에 대하여는 건강진단수첩에 검진 결과를 기록·교부함으로써 이에 갈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진단규칙 제8조는 진단규칙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정기건강진단을 실시한 보건소 또는 지정의료기관은 그 진단을 받은 자에 대한 건강진단 결과를 별지 제1호 서식의 건강진단수첩에 기재하여 이를 교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그 별지 제1호 서식의 건강진단 내용란에는 에이즈 검사 결과를 기록하는 난이 있으며, 에이즈 혈청검사는 해당란에 검사일자와 검사확인일을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건강진단수첩에 에이즈 혈청검사에 관한 진단 결과를 기재하도록 한 것은 1988. 7. 4. 보건사회부령 제820호로 진단규칙이 개정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법시행규칙 제4조 제2항은 법 제10조의 규정에 의하여 검진 또는 역학조사를 실시한 시장·군수·구청장은 검진 또는 역학조사 결과 감염자가 있는 때에는 별지 제1호 서식에 의한 감염자관리명부를 작성·관리하고, 그 내용을 지체 없이 시·도지사를 거쳐 보건사회부장관에게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제5조 제3항은 감염자가 주소를 이전한 경우에는 감염자 또는 그 세대주(세대주가 감염자 본인이거나 부재중인 경우에는 동일세대 내의 가족 중 성년자)가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즉시 관할 보건소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법시행규칙 제3조는 감염자 또는 세대주는 주소이전신고를 하면서 감염자의 성명·주민등록번호 및 직업, 신고인의 성명·주민등록번호·감염자와의 관계 및 직업, 현 거주지와 변경거주지의 주소, 이전 연월일을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법 제18조 제1항은 감염자는 법 제8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그 종사자가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는 업소에 종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법 제27조 제5호는 법 제18조 제1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취업이 제한되는 업소에 종사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 이 사건의 경우

한편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현대 의학상 인체 내에 일단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면 그 후에는 치유에 의하여 항체가 소멸하는 변화는 발생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관련 법령의 규정을 종합하여 보면 법 제8조 제1항이 규정하는 정기검진 대상자가 법이 정하는 정기검진 결과 음성 판정을 받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확인검사를 시행할 법령상의 근거가 없고, 아울러 1991. 3.과 1993. 항체검사 당시에는 정기검진 대상자에 대한 항체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하였다면 검사기관이 건강진단수첩에 검사일자와 검사확인일을 기재하여 수검자에게 교부하고, 그 이후 별도로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통지를 하지 아니하게 되면 수검자는 그로써 자신이 항체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고 볼 소지가 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원고의 경우 1987. 항체검사 결과 양성판정자로서 보건 당국의 관리를 받는 일환으로 1991. 3.과 1993. 항체검사를 받은 것이 아니고, 보건 당국의 관리에서 자의로 벗어나 법 제8조 제1항의 정기검진 대상자로 종사하면서(혹은 종사하기 위하여) 위 각 항체검사를 받기에 이르렀다고 볼 소지가 충분하다. 법 제8조 제2항과 제10조의 규정에 의하면 보건복지부장관·도지사·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은 감염자에 대하여도 에이즈에 관한 검진을 실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그 경우 항체검사는 확인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기록에 의하면 원고에 대하여는 1987. 항체검사와 판정이 이루어진 후 1988.과 1989.에 확인을 위한 것으로 짐작되는 2차 항체검사가 이루어졌을 뿐이고, 그 밖에 1991. 3.(광주 동구 보건소), 1991. 7.(전남 보성군 보건소), 1992. 2.(나주시장), 1993. 11.(제주시 보건소), 1994. 6.(군산시 보건소)의 항체검사(기록상 이들은 모두가 원고가 법 제18조의 취업 제한 규정을 위반하면서 법 제8조의 정기검진 대상 업소에 취업 또는 종사하는 과정에서 법 제8조의 규정에 의한 정기검진을 받은 것으로 볼 소지가 많다.) 이외에는 1990. 6., 1991. 3., 1991. 11., 1992. 5., 1992. 11., 1993. 5., 1993. 11., 1994. 7., 1994. 12.에 각 국립보건원에 의한 정기적인 면역검사(기록에 의하면 이는 주로 에이즈 발병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의하여 감염자의 면역체계가 파괴되었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것으로 보이고,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항체검사가 아니다.)만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과 법시행규칙이 규정하는 항체검사(국립보건원의 확인검사까지를 의미한다)를 통하여 감염자로 판명되면 그 사람은 다시는 정기검진 대상 업소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고, 감염자가 주소를 이전할 때에는 반드시 관할 보건소장에게 신고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국가가 법 제8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정기검진을 받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그가 이미 항체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정기검진 대상자에 대한 항체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이미 항체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라고 의심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따라서 더 나아가 건강진단수첩의 교부와 별도로 그 사람이 음성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더 나아가 종전의 항체검사 결과와 모순되는 결과가 나온 원인을 규명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원고로서는 1987. 항체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가 그 후 음성 판정이 나온 것을 알게 됨으로 인하여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은 당국에 대한 불신감, 의구심,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한 등에 빠지는 정신적 고통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원고가 보건 당국의 관리 범위를 자의로 벗어나 법이 취업을 금지한 업종에 종사하며 법 제8조 제1항에 의한 정기검진을 받다가 종전의 양성 판정과 모순된 음성 판정을 접하는 경우에 받게 될 정신적인 손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국가가 모든 항체검사 대상자에 대하여 종전의 검사 결과를 색출 대조할 작위의무까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결국 원심이 원고가 어떠한 경위로 1991. 3.과 1993.의 항체검사를 받게 된 것인지, 그것이 원고가 자의로 보건 당국의 관리를 벗어난 상태에서 항체검사를 받은 것인지, 당시 진단규칙에 따른 건강진단수첩의 교부를 통하여 원고가 1991. 3.과 1993.의 항체검사 판정 결과를 알 수 있는 상태가 되었던 것은 아닌지, 만약 그러하지 아니하다면 그 연유는 무엇인지, 또한 당시 국가가 운영하고 있는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 관리 체계가 어떠한 것인지, 그와 같은 관리 체계 자체가 법령에 위배되는 것인지 하는 점에 대하여 심리하지도 아니한 채 원고가 1995. 4. 21. 무렵에야 한국방송공사의 취재 과정에서 1991. 3.과 1993.의 항체검사 및 판정 결과를 알게 되었으며, 또한 전남 보건환경연구원과 제주 보건환경연구원이 원고에게 1991. 3.과 1993.의 항체검사 판정 결과를 전혀 알려 주지 아니한 채 판정의 모순점에 대한 정확한 재검사 및 재판정 절차 없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아니하고 형식적으로 정기적인 검사와 판정을 되풀이 한 관리 및 검사·판정상의 잘못을 저질렀다 하여 피고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고 만 것은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법 상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에 대한 법리 또는 법이 정하는 항체검사 결과 음성 판정의 통지 방법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위법이 있고, 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임이 명백하다.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논지는 이유가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사건을 원심 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준서(재판장) 이돈희 이임수(주심) 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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