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995. 9. 15. 선고 95도707 판결

대법원 1995. 9. 15. 선고 95도707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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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횡령]

판시사항

가. 사기죄의 실행행위로서의 기망의 대상

나. 용도를 속이고 돈을 빌린 행위가 사기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가. 사기죄의 실행행위로서의 기망은 반드시 법률행위의 중요 부분에 관한 허위표시임을 요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여 행위자가 희망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한 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실에 관한 것이면 충분하므로, 용도를 속이고 돈을 빌린 경우에 만일 진정한 용도를 고지하였더라면 상대방이 빌려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에 있는 때에는 사기죄의 실행행위인 기망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 용도를 속이고 돈을 빌린 행위가 사기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채증법칙 위배나 사기죄에 있어서 기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한 사례.

참조조문

상 고 인

피고인 및 검사

원심판결

대구지방법원 1995.2.23. 선고 94노1955 판결

주 문

1.  원심판결 중 무죄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2.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한다.

이 유

1. 피고인의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명시의 각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에 대한 판시 제1, 2의 범죄사실을 각 인정한 원심의 조치는 옳다고 여겨지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은 채증법칙을 위반하거나 심리를 미진하여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검사의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가.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인이 1992.1.21. 21:00경 대구 중구 대봉동에 있는 이삭레스토랑에서, 그 전에 피고인이 대구지방법원에서 경매방해 등 죄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피고인이 상고한 사건에 관하여, 사실은 대법관에게 로비자금으로 쓸 의사도 없고 대법원에서 피고인의 상고가 기각되더라도 피해자에게 변호사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돈을 돌려줄 의사가 없음에도 피해자 하명용에게 "대법원에는 판사가 많기 때문에 로비자금이 많이 필요하고 상고기각되더라도 착수금만 제외하고 나머지 돈은 다 돌려 받을 수 있으니 1억 5천만 원만 빌려달라"고 거짓말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같은 달 22. 위 피해자의 주거지에서 어음번호 자가 02016442호, 발행일 1992.1.22., 지급기일 1992. 4. 23.로 된 액면금 1억 5천만 원인 약속어음 1매를 교부받아 이를 편취하였다 하여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로 제기된 위 공소사실에 대하여, 피해자 하명용은 원심법정 및 수사기관에서(수사기록 제25-26면, 148-149면, 381면 등), 피해자는 소외 리오호텔 매도와 관련하여 그때까지 매수인인 윤상욱측과 한 번도 만난 사실이 없고 피고인이 피해자를 대리하여 매수인인 윤상욱과 계약체결 등의 모든 문제를 처리해 왔으며 위 호텔에 관하여 이미 경매신청이 되어 있어서 경매가 되어 버리면 피해자로서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피고인을 통해 윤상욱에게 이를 매도하여야 할 형편이었는데, 만약 피고인이 위 윤상욱과의 매매계약에서 손을 떼어 버리면 위 매매계약이 그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이 대법원에 상고한 경매방해 등 사건에 관한 교제비, 변호사 선임비 등으로 사용한다고 하면서 1억 5천만원을 빌려 달라고 하는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위 약속어음을 빌려 주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바, 이는 피고인이 위 매매계약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피고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위 약속어음을 대여하였다는 것으로 보여지고{피해자는 처음에는, 피고인이 호텔매매와 경매관계에서 손을 떼겠다고 피해자를 위협하여 이에 겁을 먹은 피해자로부터 위 돈을 갈취하였다는 내용으로 피고인을 고소하였고, 고소인 진술조서에서도 같은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수사기록 제25-27면). 그러나 이 건 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위 어음을 갈취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할 것이다}, 나아가 피해자가 당초 위 호텔 매매계약이 성사되면 그 소개비조로 피고인에게 3억 원을 지급하기로 약정하였지만 위 약속어음을 대여해 줄 당시까지 위 약정한 소개비를 피고인에게 지급하지 아니하였던 사실(피고인 및 피해자의 원심법정 및 수사기관에서의 각 진술 ; 피해자는 윤상욱으로부터 받은 이 건 매매대금 중에서 소개비 3억원을 피고인이 받아 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피해자의 원심법정에서의 진술, 윤상욱 작성의 진술서의 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이 윤상욱으로부터 받아 간 위 3억 원은 이 건 매매계약과는 별개의 은행부채 승계건 등의 윤상욱의 문제를 피고인이 처리해 주는 대가로 위 소개비와는 상관없이 윤상욱이 피고인에게 지급한 돈인 사실이 인정된다)에 비추어 볼때, 피해자로서는 피고인이 1억 5천만 원을 차용하고도 이를 변제하지 아니할 경우 피고인에게 지급하기로 한 소개비에서 이를 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피고인이 말하는 차용금의 용도와는 상관 없이 위 약속어음을 피고인에게 대여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정이 이와 같다면, 피고인이 당초부터 위 약속어음을 소송경비 등으로 사용할 의사가 없었는지 여부는 기록상 명백하지 않지만, 설사 피고인이 당초 피해자에게 말한 차용금의 용도가 거짓이었다 하여도(피고인은 당심 및 원심법정에서, 피해자가 위 어음을 대법원 소송경비와 사업자금을 하라면서 주는 것을 받아 그 중 1천만 원은 변호사 선임비로 쓰고 나머지는 피고인의 사업자금에 사용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기망행위와 피해자의 재산적 처분행위와의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할 것이고, 나아가 앞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는 당초 피고인에게 위 약속어음을 갈취당하였다고 고소한 점, 피해자에 대한 고소인 진술조서의 진술기재, 피고인 및 전석오의 원심법정에서의 각 진술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위 약속어음을 차용할 때 피해자에게 "상고기각되더라도 착수금만 제외하고 나머지 돈은 다 돌려받을 수 있다"고 거짓말하였다는 피해자의 진술도 이를 믿기 어렵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받은 위 어음은 차용금에 불과하다 할 것이므로 피고인이 당초부터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이 위 약속어음을 차용한 것이라고 인정되지 않는 한 사기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 할 것인바,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이 위 차용금을 변제하지 아니하면 피해자로서는 피고인에게 지급하기로 한 소개비에서 이를 상계할 수가 있었을 터이고 피고인도 이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므로 피고인이 당초부터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이 위 약속어음을 차용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판단하여,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은 위법하다고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나.  판 단

사기죄의 실행행위로서의 기망은 반드시 법률행위의 중요 부분에 관한 허위표시임을 요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여 행위자가 희망하는 재산적처분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한 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실에 관한 것이면 충분하므로 용도를 속이고 돈을 빌린 경우에 만일 진정한 용도를 고지하였더라면 상대방이 빌려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에 있는 때에는 사기죄의 실행행위인 기망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위 약속어음을 빌려주게 된 것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대리하여 공소외 윤상욱과의 사이에 이 사건 호텔에 관한 매매계약 체결 등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여 왔으며 위 호텔에 관하여 이미 경매신청이 되어 있어서 경매가 되어 버리면 피해자로서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피고인을 통하여 이를 위 윤상욱에게 매도하여야 할 형편이었고, 당시 피고인은 경매방해 등 죄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 중에 있어서 만약 대법원에서 무죄가 나오지 아니하면 위 형의 집행을 받기 위하여 교도소에 수감되어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피고인이 그 동안 추진하여 온 위 윤상욱과의 매매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것을 염려한 피해자가 대법원에 상고한 경매방해 등 사건에 관한 교제비, 변호사선임비 등으로 사용한다는 피고인의 말만 믿고 위 약속어음을 빌려 주게 된 것을 엿볼 수 있는데, 원심 인정과 같이 피고인이 위 금원 중 금 1천만 원만 변호사 선임비로 쓰고 나머지는 자신의 사업자금으로 사용하였다면 특단의 사정이 보이지 아니하는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인은 피해자의 이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소송비용 등을 빌미로 자신의 사업자금에 사용하기 위하여 피해자로부터 위 금원을 차용한 것으로 보여지는 바, 사정이 위와 같다면 피고인은 용도를 속이고 돈을 빌린 것으로 보여지고 만약 진정한 용도를 고지하였으면 당시 자신 소유의 호텔이 경매에 처하는 등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던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금 1억 5천만 원이나 되는 약속어음을 선뜻 빌려 주지 않았을 것으로 추단되므로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는 사기죄에 있어서 기망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위 약속어음을 빌려 주게 된 구체적인 과정과 그 동기 및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위 약속어음을 받고 그 말한 용도에 쓰지 아니한 경위 등을 상세히 심리하여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가 사기죄에 있어서 기망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였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위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것은 채증법칙 위배나 사기죄에 있어서 기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할 것이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3.  그러므로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판결 중 무죄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피고인의 상고는 기각하기로 관여 법관들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만호(재판장) 박준서 김형선(주심) 이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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