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우두머리, 간부, 행동대원으로 역할분담을 하고 상하관계가 정해진 30여명의 구성원으로 조직되어 확립된 위계질서에 따라 지휘, 통솔이 이루어지며 정해진 행동강령과 규율 아래 시내 일대의 유흥가를 폭력으로 지배하여 경제적인 이권을 확보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활동하여 온 두 폭력조직이 시내 일대 유흥가의 주도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여 양파의 구성원들이 수시로 쇠파이프 등을 사용하면서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온 경우 위 두 폭력조직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에 규정된 범죄단체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나. 폭력범죄단체의 구성원들이 거의 모두 동원되어 저지른 범죄행위는 그 범죄단체의 우두머리와 간부의 지시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합당한데도, 원심이 이들의 지시에 의하여 범죄사실이 이루어졌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채증법칙위반의 위법을 저질렀다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다. 경합범 중 일부에 대하여 무죄, 일부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판결의 무죄부분을 파기하는 경우의 상고심의 심판범위
가. 단체의 조직활동 일체를 지휘, 통솔하는 우두머리와 단체구성원을 통솔, 지도하는 간부 및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행동대원으로 각기 역할과 임무를 분담하고, 간부 밑에 대체로 나이순서에 따라 상하관계가 정해진 30여명의 구성원으로 조직되어, 선배들에 대하여 예의를 지키고 절대복종하여야 한다는 등으로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그 위계질서에 따라 지휘, 통솔이 이루어지며, 구성원이 공격을 당하면 구성원 모두가 반격을 하여 복수하고 싸움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행동강령과 단체에서의 탈퇴를 허용하지 않는 등의 규율 아래, 시내 일대의 유흥가를 폭력으로 지배하여 유흥업소를 장악함과 아울러 경제적인 이권을 확보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유사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쇠파이프, 칼, 낫 등의 무기를 항상 은닉하여 두고 활동하여 온 두 폭력조직이 시내 일대 유흥가의 주도권을 놓고 쟁탈전 내지 불법적인 이익의 독점을 위한 세력싸움을 벌여, 양파의 구성원들이 수시로 쇠파이프 각목, 칼 등을 사용하면서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온 경우, 폭력범죄집단은 합법적인 단체와는 달라 범죄단체의 특성상 단체로서의 계속적인 결집성이 다소 불안정하고 그 통솔체제가 대내외적으로 반드시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구성원들간의 관계가 선후배 혹은 형, 아우로 쳐져 그들 특유의 규율에 따른 통솔이 이루어져 단체나 집단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은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두 폭력조직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에 규정된 범죄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계속적인 결합체로서 그 단체를 주도하거나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통솔체제를 갖추고 있는 단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 폭력범죄단체의 구성원들이 거의 모두 동원되어 저지른 범죄행위는 그 범죄단체의 우두머리와 간부의 지시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합당한데도, 원심이 이들의 지시에 의하여 범죄사실이 이루어졌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채증법칙위반의 위법을 저질렀다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다. 경합범 중 일부에 대하여 무죄, 일부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판결에 대하여 검사가 상고를 제기한 무죄부분에만 파기사유가 있는 경우, 일부 피고인들의 유죄부분에 대한 상고는 이유가 없는 것이지만 항소심이 위 피고인들에 대하여 유죄로 인정한 죄와 무죄를 선고한 죄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으로 공소가 제기된 것이므로 항소심판결의 유죄부분도 함께 파기하지 아니할 수 없고, 일부 피고인들은 유죄부분에 대하여 상고를 제기하지 아니하였거나 상고를 제기하였다가 취하하였거나 상고를 포기하였다고 하더라도 당초 위 두 죄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으로 공소가 제기된 만큼
같은 법 제38조 제1항 제2호에 따라서 단일한 형으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어서 양형상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므로 검사의 위 피고인들에 대한 상고가 이유 있어 항소심판결의 무죄부분을 파기하는 마당에는 유죄부분도 함께 파기하는 것이 상당하다.
가.
대법원 1987.3.24. 선고 87도157,87감도15 판결(공1987,765),
1989.4.25. 선고 89도212 판결(공1989,839),
1991.1.15. 선고 90도2301 판결(공1991,793) / 나.
대법원 1979.7.10. 선고 79도840 판결(공1979,12117),
1989.12.12. 선고 89도2020 판결(공1990,311),
1990.2.13. 선고 89도1457 판결(공1990,702)
변호사 이준승 외 4인
대구고등법원 1991.1.28. 선고 90노812 판결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에 환송한다.
1. 피고인 2, 3, 4, 5, 6, 7, 8, 9, 10과 변호인들(국선변호인 포함)의 각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인 3, 5의 변호인 이병후와 피고인 10의 각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원심은, 검사작성의 제1심공동피고인 13, 피고인 11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는 각 피고인들이 각기 그 조서에 간인한 후 서명하고 무인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피고인들이 범죄사실을 부인하는데도 검사가 관여하지 아니한 채 수사관이나 경찰관이 멋대로 타자하여 강제로 간인과 서명 및 무인을 시킨 것이라고 피고인들이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을 뿐, 그 주장을 수긍할 만한 자료가 없으며, 피고인들의 간인과 서명 및 무인이 형사소송법 제244조 제2항 및 제3항 소정의 절차를 거친바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만한 사정도 찾아 볼 수 없으므로, 검사 작성의 위 피고인들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는 원진술자인 각 피고인들의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것이라고 보아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는 바, 관계증거와 기록에 의하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될 뿐만 아니라, 위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형식과 내용, 진술자들의 학력, 경력, 직업, 지능정도 등 제반사정에 비추어 볼 때, 위 각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각 피고인 들의 진술이 소론과 같이 임의로 된 것이 아니라고는 보여지지 아니하므로, 원심판결에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이나 자백의 임의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를 유죄의 증거로 삼은 위법이 있다는 취지의 논지는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
나. 피고인 3, 5의 변호인 이병후와 피고인 10의 각 상고이유 제2점과 피고인 2, 3, 5, 6, 7, 8, 9의 각 상고이유 및 피고인 4와 피고인들의 국선변호인 박정근의 각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이 채용한 증거들을 기록과 대조하여 검토하면, 원심이 유죄로 판시한 위 피고인들의 이 사건 1990.4.21. 14:00경 또는 21:00경의 범죄사실과 피고인 9의 1990.4.14. 16:00경의 범죄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원심판결에 소론과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한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논지도 모두 이유가 없다.
다. 피고인 4와 피고인들의 국선변호인 박정근의 각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하여,
이 사건에 있어서와 같이 징역 10년 미만씩의 형이 선고된 판결에 대하여는형의 양정이 부당함을 들어 상고이유로 할 수 없는 것이므로, 논지도 모두 이유가 없다.
2.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범죄단체구성죄에 관한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1) 원심은, 이 사건에서 범죄단체라고 공소가 제기된 이른바 "우정파"와 "소야파"의 구성원들이 경영하거나 종사하고 있는 각 유흥업소간에 서로 경쟁관계가 있거나 그 유흥업소의 운영 또는 취업에 관하여 양파간에 의견 또는 이해가 대립된 사정을 찾아 볼 수 없어, 그들끼리 폭력조직을 유지할 만한 경제적 이권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고, 또 위 각 단체의 구성원간에 위계질서와 행동강령을 정하였다는 점에 관한 피고인들의 검찰에서의 진술부분은, 그 임무분담의 내용, 서열관계 그리고 행동지침의 규정시기, 장소, 방법, 내용 그 전달 내지 교육방법 등에 관하여 각자의 진술내용이 구구각각이어서, 이는 결국 폭력계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적인 사항에 관하여 조사관의 추궁에 따라 나름대로 나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며, 또 우정파의 경우 피고인 1이 조직의 수괴로서 구체적으로 지휘하거나 행동한 사실이 전혀 드러난 바가 없고, 소야파의 경우는 피고인 5가 제1심 판시 제24항의 범행에 관여한 것은 수괴로서라기 보다는 제22항, 제23항 범행의 재산상 피해자로서 가담하게 된 것으로 보이며, 그 밖의 원심 판시 각 범행들도 그 동기와 수법으로 보아 폭력집단의 목표인 폭력세계의 주도권쟁탈 내지 불법적인 이익의 선점이나 독점을 노리는 등의 구체적인 목적을 위한 세력싸움이라기 보다는 서로 잘 어울리지 아니하는 폭력배들의 일부 패거리들끼리 사소한 감정대립으로 인한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충돌과 그에서 비롯된 쌍방의 보복행위가 상승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보이므로, 결국 우정파나 소야파로 불리는 폭력집단은 그 구성원들인 피고인들의 활동무대인 영천시 일원의 개발정도에 따라 장차 범죄단체로 본격적인 조직을 갖추게 될 모체로 볼 여지는 없지 아니하나, 현재의 규모나 성격으로 보아서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제4조에서 말하는 범죄단체까지에는 미처 이르지 못한 단계로서, 폭력배끼리 그들 나름대로의 친목을 위한 모임에 지나지 아니한다고 판단한 끝에,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우정파와 소야파가 위 법조 소정의 범죄단체임을 전제로, 피고인들이 수괴나 간부 또는 가입한 자로서 범죄단체를 구성한 것이라는 점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2) 그러나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이 채용한 증거들(다만 원심이 증거능력을 부인한 검사작성의 제1심공동피고인 13, 피고인 11에 대한 각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는 제외)을 종합하면, 우정파는 피고인 전현욱, 김철휴, 서영진, 전태욱과 공소외 김경수, 이상익, 김상규 등이 1985년경에 조직한 단체를 모체로 하여, 늦어도 1989년경부터는 술집종업원 또는 학생들이나 직업이 없는 피고인 김종태, 김진성, 김동석, 전진열, 백경호, 한정수, 정호범, 최준오, 김병현, 김권주, 김만성과제1심 공동피고인 김태형, 김태현, 최동엽, 안동석, 권혁민, 정수익, 조기성, 권오준, 정성엽, 정대원 등을 위 단체에 가입시키는 등으로 단체의 조직을 확대 강화하여 나가면서, 피고인 전현욱을 단체의 조직활동 일체를 지휘, 통솔하는 우두머리로, 피고인 김철휴, 서영진, 전태욱, 엄일진과 공소외 김경수, 이상익, 김상규, 김경표 등을 단체구성원을 통솔, 지도하는 간부로, 나머지 구성원들은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행동대원으로, 각기 역할과 임무를 분담하고, 대체로 나이 순서에 따라 위 간부 밑에 김홍택, 배경호, 임성식 등, 그 밑에 김권주, 한정수, 정대원, 남기우 등, 그 밑에 김만성, 안동석, 김병현 등, 그 밑에 김종태, 최동엽, 김진성, 정호범, 전진열, 최준오, 김태형, 김태현, 권혁민, 김동석 등 30여명의 구성원으로 조직되어, 선배들에 대한 인사는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하고 선배들의 지시에는 절대복종하여야 한다는 등으로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그 위계질서에 따라 지휘, 통솔이 이루어졌으며, 구성원이 공격을 당하면 구성원 모두가 반격을 하여 복수하고 싸움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행동강령과 단체에서의 탈퇴를 허용하지 않는 등의 규율 아래, 영천시내 일대의 유흥가를 폭력으로 지배하여 그 구성원들을 유흥업소의 지배인이나 종업원으로 취업시킴으로써 유흥업소를 장악함과 아울러 경제적인 이권을 확보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유사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쇠파이프, 칼, 낫 등의 무기를 항상 은닉하여 두고 활동하여 온 사실, 한편 소야파는 피고인 이성환, 김일만, 배종신, 김상필, 최남형 등이 주축이 되어 1989.11.경에 조직한 단체로서, 그 뒤 술집종업원 또는 학생들이나 직업이 없는 피고인 이경식, 한승우, 권진환, 임재섭, 정영도, 이원희, 최성환과 제1심 공동피고인 김기도, 송성수, 심상도 등을 위 단체에 가입시키는 등으로 단체의 조직을 확대 강화하여 나가면서, 피고인 이성환을 단체의 조직활동 일체를 지휘, 통솔하는 우두머리로, 피고인 김일만, 배종신, 김상필, 최남형 등을 단체구성원을 통솔, 지도하는 간부로, 나머지 구성원들은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행동대원으로, 각기 역할과 임무를 분담하고, 대체로 나이순서에 따라 위 간부 밑에 이원희, 김영환, 임재섭, 이경식 등 그 밑에 권진환, 한승우, 심상도, 정영도, 이상혁, 이상준, 김기도, 송성수, 박복환, 최성환 등, 30여명의 구성원으로 조직되어, 선배들에게는 예의를 지키고 절대복종하여야 한다는 등으로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그 위계질서에 따라지휘, 통솔이 이루어졌으며, 의리없이 사는 것보다는 의리있게 죽어야 하고 구성원이 공격을 당하면 구성원 모두가 반격을 하여 복수하며, 싸움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행동강령과 단체에서의 탈퇴를 허용하지 않는 등의 규율 아래, 영천시내 일대의 유흥가를 폭력으로 지배하여 유흥업소를 장악함과 아울러 경제적인 이권을 확보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유사시에 사용할수 있도록 쇠파이프, 낫, 칼 등을 항상 은닉하여 두고 활동하여 온 사실, 이에따라 영천시내 일대유흥가의 주도권을 놓고 우정파와 소야파 사이에 쟁탈전이 벌어져, 원심도 인정한 바와 같이 양파의 구성원들이 1990.3.26, 4.14, 4.18, 4.21. 등 수시로 쇠파이프, 각목, 칼 등을 사용하면서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온 사실 등이 인정된다.
(3) 위와 같이 우정파나 소야파가 각기 영천시내의 유흥업소를 장악하여 경제적인 이권을 확보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던 이상, 양파간에 경쟁관계가 형성되어 서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하여 폭력조직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할 것이고, 폭력조직의 구성원간의 위계질서나 행동강령 등이 폭력계에 널리 알려진 대로 일반적인 것으로서 별다른 특색이 없다고 하여 범죄단체의 구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며, 또 이 점들에 관한 피고인들(범죄단체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 피고인 전현욱, 김철휴를 제외한)의 검사 앞에서의 진술이 부분적으로는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진술의 내용이 거의 일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폭력범죄집단은 합법적인 단체와는 달라 범죄단체의 특성상 단체로서의 계속적인 결집성이 다소 불안정하고 그 통솔체제가 대내외적으로 반드시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구성원들간의 관계가 선후배 혹은 형, 아우로 뭉쳐져 그들 특유의 규율에 따른 통솔이 이루어져 단체나 집단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은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의 위와 같은 진술이 오히려 진실에 합치되는 것으로 보이고, 또 피고인 전현욱과 김철휴가 우정파의 수괴와 간부로서 1990.4.21.자,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범죄의 실행을 지시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임은 뒤의 나. 항에서 판단하는 바와 같고, 원심도 인정한 바와 같이 우정파와 소야파의 구성원들이 1990.3.26. 4.14. 4.18. 4.21. 등 수시로 일으킨 집단적인 폭력행위의 동기나 수단 및 방법 등에서 볼 수 있는 보복성이나 잔학성, 특히 4.18.과 4.21.에 발생한 폭력행위의 내용(소야파의 구성원인 소야룸싸롱 종업원들이 평소에 우정파와 친하게 지내던 구본열의 결혼식에서 신부 등을 희롱하였다는 이유로, 우정파의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쇠파이프, 각목, 칼 등을 나누어 들고 소야파의 우두머리인 피고인 이성환이 경영하는 한진건설의 사무실 및 소야룸싸롱과 피고인 이성환의 누나가 경영하는 천마다방 등으로 쳐들어가 재물을 손괴하고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점), 그리고 피고인들이 대부분 폭력행위 등으로 입건되거나 처벌된 경력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때, 우정파와 소야파의 구성원들이 위와 같이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것은 그들 집단의 목표인 폭력세계의 주도권쟁탈 내지 불법적인 이익의 독점을 위한 세력싸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그렇다면 우정파와 소야파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에 규정된 범죄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계속적인 결합체로서 그 단체를 주도하거나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통솔체제를 갖추고 있는 단체라고 보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우정파나 소야파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제4조 소정의 범죄단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반하였거나 위 법조 소정의 범죄단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은 위법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임이 명백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가 있다.
나. 피고인 1 및 13의 1990.4.21. 자 범죄사실에 관한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하여,
(1) 원심은, 피고인 1 및 13의 지시에 의하여 1990.4.21.자, 범죄사실이 행하여 졌다는 점에 부합하는 검사 작성의 피고인 4, 18, 20, 21, 제1심공동피고인 3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진술기재는, 위 피고인들의 제1심법정 이래의 변소와 원심증인 공소외 7의 증언 및 그에 대한 사법경찰리 작성의 진술조서의 진술기재 등과 대비하여 보면, 신빙성이 희박하여 믿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위 피고인들의 이 점 공소사실에 대하여도 무죄를 선고하였다.
(2) 그러나 원심이 믿기 어렵다고 배척한 검사작성의 피고인 4, 18, 20, 21, 제1심공동피고인 3에 대한 각 피의자 신문조서의 각 진술기재와 그 밖에 검사 작성의 제1심공동피고인 5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및 사법경찰리 작성의 공소외 7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일부 진술기재, 그리고 원심도 인정한 다음과 같은 사실, 즉 피고인 13 소유의 자동차가 1990.4.21.자, 범행에 제공되었고, 우정파의 구성원들이 범행후 도주하여 모여 있는 영천시 소재 도동보에 위 피고인이 간 사실이 있으며, 또 범행 다음날 상대온천에서 피고인 1 및 13 범행을 저지른 우정파의 구성원들과 함께 만났다가 각자 흩어져 상당한 기간 피신하고 있었던 사정 등을 종합하여 고찰하면, 우정파의 구성원들이 거의 모두 동원되어 1990.4.21. 저지른 범죄행위는, 우정파의 우두머리인 피고인 전현욱과 간부인 피고인 김철휴의 지시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경험칙에 합당하고, 이와 상치되는 피고인 전현욱 및 김철휴의 변소나 가장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행동대원이었던 원심증인 임성식의 진술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그렇다면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반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고, 이와 같은 위법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임이 명백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도 이유가 있다.
3. 그렇다면 원심판결 중 피고인 전현욱, 김철휴, 서영진, 전태욱, 엄일진, 최성환에 관한 부분과 그밖의 피고인들에 관한 무죄 부분은 파기를 면치 못할것인 바, 피고인 김병현, 김권주, 김만성, 이성환, 김일만, 배종신, 김상필, 임재섭, 이원희의 유죄부분에 대한 상고는 이유가 없는 것임이 앞에서 판단한 대로이지만, 원심이 위 피고인들에 대하여 유죄로 인정한 각죄와 무죄를 선고한 각 죄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으로 공소가 제기된 것이므로, 원심판결의 유죄부분도 무죄부분과 함께 파기하지 아니할 수 없고, 피고인 김종태, 김진성, 김동석, 전진열, 백경호, 한정수, 정호범, 최준오, 최남형, 이경식, 한승우, 권진한, 정영도는 유죄 부분에 대하여 상고를 제기하지 아니하였거나 상고를 제기하였다가 취하하였거나 상고의 포기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당초 원심이 위 피고인들에 대하여 유죄로 인정한 각 죄와 무죄를 선고한 각 죄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으로 공소가 제기된 것인 만큼, 형법 제38조 제1항 제2호에 따라서 단일한 형으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어서 양형상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므로, 검사의 위 피고인들에 관한 무죄부분에 대한 상고가 이유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원심판결의 무죄부분을 파기하는 마당에는 유죄부분도 함께 파기하는 것이 상당하다.
그러므로 원심판결 전부를 파기하고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