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재심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에이스 담당변호사 이종찬 외 3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구충서 외 7인)
1. 원심판결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 중 원고에게 3억 원에 대하여 2009. 11. 11.부터 2011. 1. 27.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초과하여 지급을 명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그 부분 제1심판결을 취소하며, 그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피고의 나머지 상고를 기각한다.
3. 소송총비용은 이를 3분하여 그 2는 원고가,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증거의 취사와 사실의 인정은 사실심의 전권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적법한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는 것이고( 대법원 2001. 8. 24. 선고 2001다33048 판결 , 대법원 2005. 7. 15. 선고 2003다61689 판결 등 참조), 한편 국가배상책임은 공무원에 의한 가해행위의 태양이 확정될 수 있으면 성립되고 구체적인 행위자가 반드시 특정될 것을 요하지 않는다.
제1심판결 이유를 인용한 원심은, 그 채용 증거를 종합하여 피고 산하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원고를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가하여 허위의 자백을 받아내었다는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피고는 판시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위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옳은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사실을 인정한 위법이나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하여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 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으므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채권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그 채권자들 중 일부가 이미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원고에 대한 유죄판결 확정일 또는 원고의 출소일로부터 민법 제766조 제1항 의 소멸시효기간 3년 또는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 의 소멸시효기간 5년이 이미 경과하여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항변에 대하여, 판시와 같은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보면 원고에 대한 재심판결이 확정된 2008. 12. 26.까지는 원고들이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또한 이 사건은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큰 반면, 국가의 채무이행 거절을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위배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사실을 인정한 위법이나 소멸시효 항변과 권리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
3. 상고이유 제3점에 대하여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판시와 같이 원고가 영장 없이 11일 동안 불법구금되었고 영장 발부 후에도 가족 면회나 변호인의 접견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구타, 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당한 점, 허위 자백으로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약 5년간 복역하였고, 그 후에도 약 15년간 보안관찰처분에 따른 거주이전 등의 제한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학업과 정치인의 꿈을 접고 서적 외판원 등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 점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참작하고 여기에 원고가 받은 형사보상금을 공제하여 원고에 대하여 3억 원의 위자료를 산정한 다음, 위자료 액수는 사실심 법원이 불법행위일 이후 사실심 변론종결일까지 나타난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확정하는 것이므로 변론종결 당시의 통화가치를 기준으로 산정한 위자료가 원고에게 이중의 이득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나아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에 대하여는 이행을 구하는 별도의 최고가 없더라도 공평의 관념에 비추어 불법행위 성립과 동시에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이유로, 위 3억 원에 대하여 피고의 불법감금, 고문 등 불법행위일 이후로서 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 원고에 대한 유죄 판결이 확정된 1969. 12. 23.부터 지연손해금을 가산하였다.
그러나 원심의 위 판단 중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물론 불법행위가 없었더라면 피해자가 그 손해를 입은 법익을 계속해서 온전히 향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이행 최고가 없더라도 공평의 관념에 비추어 그 성립과 동시에 불법행위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서는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까지 발생한 일체의 사정이 그 참작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위자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 등도 변론종결시의 것을 반영해야만 하는바,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시기와 가까운 무렵에 통화가치 등의 별다른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위자료 액수가 결정된 경우에는 위와 같이 불법행위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더라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으나,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도 덮어놓고 불법행위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현저한 과잉배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위와 같이 변동된 통화가치 등을 추가로 참작하여 위자료의 수액을 재산정해야 하는데, 이러한 사정은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무렵의 위자료 산정의 기초되는 기존의 제반사정과는 명백히 구별되는 것이고, 변론종결의 시점에서야 전적으로 새롭게 고려되는 사정으로서 어찌 보면 변론종결시에 비로소 발생한 사정이라고도 할 수 있어, 이처럼 위자료 산정의 기준되는 통화가치 등의 요인이 변론종결시에 변동된 사정을 참작하여 위자료가 증액된 부분에 대하여 불법행위시로부터 지연이자를 붙일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사건과 같이 피고 소속 공무원들에 의하여 원고에 대한 불법구금이 개시된 1969. 1. 28.경으로부터 원심의 변론종결일인 2009. 11. 11.까지 4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물가와 국민소득수준 등이 몇 곱절 상승함으로 말미암아 이를 반영하여 증액된 위자료에 대하여 이 사건 불법행위가 저질러진 시기와 가까운 때인 1969년 무렵부터 지연이자가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현저하게 과잉된 지연배상을 허용하는 결과가 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처럼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는, 예외적으로라도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산정의 기준시인 사실심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결국 원심판결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이자 기산일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이러한 위법은 판결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한편 위와 같이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그 위자료산정의 기준시인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만 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논리상 변론종결시 이전에는 지연이자를 붙일 수 없는 결과, 위자료채무가 성립한 불법행위시로부터 지연이자를 붙이는 원칙적인 경우와는 달리, 사실심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위자료 원본 액수를 산정함에 있어 불법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즉시 지급함이 적절하다고 보이는 액수의 위자료에 대하여 불법행위시로부터 변론종결시까지 배상이 지연된 사정을 적절히 참작하여 변론종결시의 위자료 원본을 증액 산정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사정에 더하여 이 사건에서 공무원들이 자행한 인권침해행위의 내용과 정도, 그로 인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입은 고통의 내용과 기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보면 원심이 원고에 대하여 인정한 위자료 원금 액수는 다소 적다고 볼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피고만 상고하였을 뿐 원고는 불복하지 아니한 이 사건에서 원고 패소 부분은 당심의 심판범위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심이 인정한 위자료 원본액이 과소하여 이를 증액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원심판결 중 원고 패소 부분 즉 피고 승소 부분까지 파기하는 것은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때문에라도 허용될 수 없으므로, 결국 당심에서 피고에게 불이익하게 원고 패소 부분까지 파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원심이 일실이익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아님에도 원고가 청구하지 않은 일실이익과 적극적 손해를 위자료에 참작함으로써 소송물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처분권주의에 위반한 위법이 있다는 상고이유 주장은, 상고이유서 제출기간 경과 후의 2010. 3. 18.자 상고이유보충서에서 처음 개진된 것으로서 당초의 상고이유를 보충한 것이거나 직권조사사항에 관한 것도 아니므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다.
4. 상고이유 제4점에 대하여
이 부분 상고이유는 이 사건 지연손해금 청구에 대하여는 소멸시효 항변이 인용되어야 한다는 취지이나, 원심 변론종결일까지의 지연손해금 부분을 위 제3항의 이유로 파기하는 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아니한다.
5.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되, 이 부분은 이 법원이 직접 재판하기에 충분하므로 민사소송법 제437조 에 따라 자판하기로 하는바, 원심판결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 중 원고에게 3억 원에 대하여 원심 변론종결일인 2009. 11. 11.부터 이 판결 선고일인 2011. 1. 27.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초과하여 지급을 명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그 부분 제1심판결을 취소하며, 그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이상과 같이 피고의 상고 중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은 일부 이유 있으므로 이를 받아들여 위와 같이 판결하는 한편으로, 나머지 상고는 이유 없어 기각하며, 소송총비용 중 3분의 2는 원고의, 나머지는 피고의 각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