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법상 부작위범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
[2] 압류된 골프장시설을 보관하는 회사의 대표이사가 위 압류시설의 사용 및 봉인의 훼손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 없이 골프장을 개장하게 하여 봉인이 훼손되게 한 경우, 부작위에 의한 공무상표시무효죄의 성립을 인정한 사례
[1] 대법원 1992. 2. 11. 선고 91도2951 판결(공1992, 1077), 대법원 1997. 3. 14. 선고 96도1639 판결(공1997상, 1157), 대법원 2003. 12. 12. 선고 2003도5207 판결
피고인
검사
수원지법 2005. 4. 20. 선고 2005노419 판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 합의부로 환송한다.
상고이유를 본다.
1. 원심판결의 요지
가.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은 광주시 실촌면 오향리 소재 오향관광개발 주식회사(이하 '공소외 회사'라고 한다)의 대표이사로서, 2003. 6. 30. 위 회사가 운영하는 경기컨트리클럽 골프장에서 광주시청 세무과 소속 공소외 1, 공소외 2 등이 광주시장의 위임을 받아 위 골프장의 경락전 운영자이던 태우관광개발 주식회사 소유의 모노레일, 엘리베이터(이하 '이 사건 압류시설'이라고 한다)를 압류, 봉인하고 그 뜻을 기재한 표시를 하였음에도 2003. 7. 1. 위 봉인을 제거하고 압류시설을 사용함으로써 그 효용을 해하였다는 것이고, 예비적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공소외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위 회사가 관리하는 시설물에 대한 압류, 봉인의 조치가 이루어진 사실을 알았으면 이를 훼손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3. 6. 30. 위와 같은 압류, 봉인의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그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2003. 7. 1. 골프장을 개장하여 위 압류시설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위 봉인이 훼손되게 하여 그 효용을 해하였다는 것이다.
나. 이에 대하여 원심은,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는 이 사건 압류시설에 부착된 봉인의 훼손금지의무는 압류채무자 및 소유자를 비롯한 일반인 모두에게 있으므로 피고인이 직접 봉인을 제거하거나 제3자에게 이를 지시한 증거가 없는 이상 피고인이 골프장 영업을 개시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위 봉인의 훼손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아 무죄로 판단하고, 예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는 지방세법 제82조 및 조세징수법 제39조에 따라 압류한 동산을 체납자나 제3자에게 보관하게 하는 경우 그 체납자 또는 보관자는 소극적으로 관할 관청으로부터 사용·수익의 허가를 받기 전에는 압류 동산의 사용금지의무가 있다고 인정되나, 적극적으로 압류의 봉인이 훼손되지 않도록 구체적 조치를 취할 법률상·조리상 의무는 인정되지 아니하는 이상 피고인에게 그러한 의무가 존재함을 전제로 한 예비적 공소사실도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2. 대법원의 판단
가. 피고인이 이 사건 압류시설의 보관자 지위에 있는 공소외 회사의 대표이사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만으로 위 압류물에 행하여진 봉인의 훼손 결과에 대하여 자연인으로서의 피고인이 당연히 공무상표시무효죄의 죄책을 부담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고, 기록상 피고인이 위 봉인을 직접 훼손 혹은 지시하거나 아래 예비적 공소사실에 관한 부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봉인의 훼손이 당연히 예견되는 골프장 개장 및 시설물 작동을 지시하는 등 적극적 작위로서의 위 훼손 혹은 그에 상당하는 행위가 존재함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이상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부족을 이유로 무죄라고 본 제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의 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 그러나 예비적 공소사실에 관한 원심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법익침해의 결과발생을 방지할 법적인 작위의무를 지고 있는 자가 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결과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고 이를 방관한 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에, 그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법익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그 범죄의 실행행위로 평가될 만한 것이라면, 작위에 의한 실행행위와 동일하게 부작위범으로 처벌할 수 있고, 여기서 작위의무는 성문법과 불문법, 공법과 사법을 불문하고 법령, 법률행위, 선행행위로 인한 경우는 물론, 기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상 작위의무가 기대되는 경우에도 인정된다 할 것이다( 대법원 1992. 2. 11. 선고 91도2951 판결, 1997. 3. 14. 선고 96도1639 판결, 2003. 12. 12. 선고 2003도5207 판결 등 참조).
원심 판시와 같이 이 사건 압류시설의 보관자 지위에 있는 공소외 회사로서는 위 압류시설을 선량한 관리자로서 보관할 주의의무가 있다 할 것이고( 대법원 2003. 9. 5. 선고 2002다44854 판결 참조), 그 대표이사로서 위 압류시설이 위치한 골프장의 개장 및 운영 전반에 걸친 포괄적 권한과 의무를 지닌 피고인으로서는 위와 같은 회사의 대외적 의무사항이 준수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위임계약 혹은 조리상의 작위의무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이러한 작위의무의 내용 중에 불특정의 고객 등 제3자에 의한 위 봉인의 훼손행위를 방지할 일반적 안전조치를 취할 의무까지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위 압류, 봉인에 의하여 사용이 금지된 골프장 시설물에 대하여 위 시설물의 사용 및 그 당연한 귀결로서 봉인의 훼손을 초래하게 될 골프장의 개장 및 그에 따른 압류시설 작동을 제한하거나 그 사용 및 훼손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는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럼에도 피고인이 그러한 조치 없이 위 개장 및 압류시설 작동을 의도적으로 묵인 내지 방치함으로써 예견된 결과를 유발한 경우에는 부작위에 의한 공무상표시무효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2003. 6. 30.자로 이 사건 압류시설에 대한 압류, 봉인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음을 피고인도 인지한 점, 골프장 고객들이 아무런 제지 없이 위 압류시설을 사용할 경우 부착된 봉인이 훼손될 위험성이 있는 점, 그럼에도 피고인이 2003. 7. 1. 골프장 개장을 방치하였고 그 결과 위 압류시설이 사용되고 그 봉인이 훼손된 점은 원심도 인정한 바와 같고, 한편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압류, 봉인의 조치는 종전의 1차 압류 후 봉인이 훼손된 데 따른 재봉인 조치로서 그 때문에 특별히 압류시설 사용금지의 고지까지 수반하여 이루어진 점, 위 압류시설 사용시에 봉인이 훼손된다는 사정 또한 피고인이 이를 인식하고 있었던 점을 알 수 있는바, 앞서 본 법리 및 위 회사의 대표이사인 피고인에게 인정되는 작위의무의 내용에 비추어 위와 같은 피고인의 부작위(조치의무 불이행)는 위 봉인을 훼손하고 압류시설을 사용함으로써 그 효용을 해하는 적극적 작위로서의 행위와 다름없다고 형법상 평가될 만한 공무상표시무효죄의 실행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 예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에는 회사 대표이사의 부작위에 의한 공무상표시무효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끼친 위법이 있다 할 것이니, 이 점에 관한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할 것이다.
3. 결 론
그렇다면 원심판결 중 예비적 공소사실에 관한 부분은 파기될 수밖에 없고 그와 동일체의 관계에 있는 주위적 공소사실에 관한 부분 역시 함께 파기될 수밖에 없으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